고엽제에 고통받는 상처뿐인 김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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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에 고통받는 상처뿐인 김 상사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1.05.25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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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어느 날로 기억된다. 밤늦게 기자가 탄 서울행 고속버스가 천안분기점 인근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자정이 넘은 시각의 고속도로는 대형사고가 나지 않는 한 명절에도 거의 막히지 않는다. 분명 이유가 있었다.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원들이 의료혜택 확대와 보상금을 요구하며 저속주행시위를 하다 급기야 차량을 세운 채 열쇠를 뽑아간 것이다.

월남 파병을 다녀온 사람이 저 정도로 시위를 한다면 잘은 몰라도 억울함이 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차량이 치워지고 버스는 다시 달릴 수 있었지만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시내버스는 이미 운행을 마친 뒤였다. 고엽제 전우회의 시위 덕분에 택시비가 부족했던 기자는 집까지 두 시간여를 걸어가야만 했다.

그 뒤 기자는 고엽제 전우회원을 몇 차례 만날 수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미군과 똑같이 월급을 주겠다는 통보를 받고 조국을 위해 기꺼이 참전했지만 국가재건이라는 명목으로 파병수당은 거둬가고 손에 쥐어진 것은 일반 사병 월급뿐이었다. 국가는 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짓고 포항제철을 지었다. 각종 개발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으로도 쓰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들은 국가에 돈을 갈취 당했지만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목숨 걸고 번 돈이 국가재건에 쓰였다는 자부심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국민가요가 됐다. 알 수 없는 병에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파병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자랑거리가 됐다.

뒤늦게 그 병이 고엽제 후유증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 문제였다. 월남서 전사한 이는 현충원에 묻히고 그의 가족은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살아남아 병을 앓았던 이들은 제한된 무료치료와 매월 나오는 약간의 보상금뿐이었다. 이른바 ‘김 상사’들은 분개했다. 마침내 대형 화물차로 고속도로를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국가유공자 지정을 바라보게 됐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천안함 장병보다, 다른 상이군경들보다 못할 이유가 없음에도 왜 국가로부터 외면 받아야 했는지 그들은 진지하게 묻고 있다.

고엽제 전우회는 시간이 갈수록 회원이 줄어 활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들은 산자가 죽은 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은 이유에 대해, 그리고 후유증으로 빼앗긴 세월에 대해 위로받고 싶어 한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면을 기록한 그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어떤가. 아직은 따뜻하지 않은 것같다. 기자만의 생각이라면 천만 당행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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