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대중가요와 한국사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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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대중가요와 한국사회①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10.0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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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와 함께 살펴본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9)
▲펄시스터즈 앨범 (님아, 커피 한 잔)
▲펄시스터즈 앨범 (님아, 커피 한 잔)

 

1969년은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등이 달 표면을 밟았고,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첫 비행에 성공한 해였다.
국내에선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삼선개헌 파동이 일어난 해였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은 삼선개헌안과 국민투표법안을 9월 14일 국회에서 변칙 통과시켰다. 서울시내 중학교 무시험 추첨입학제가 실시되었고, ‘가정의례준칙’이 발표된 해이기도 하다.
3월 17일 문화방송(MBC) 라디오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가 첫 전파를 타며 청소년들의 벗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8월 1일에는 문화방송이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대중음악사에서 1969년은 바야흐로 청년문화의 물결이 대한민국을 휩쓸 채비를 거의 끝낸 해였다.

▲가수 김추자. (한겨레 사진)
▲가수 김추자. (한겨레 사진)

 

MBC 10대가수 청백전의 ‘반란’

1969년 12월 2일 서울시민회관에서는 ‘문화방송 10대 가수청백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자가수에 이미자ㆍ패티김ㆍ김상희ㆍ펄시스터즈ㆍ김세레나, 남자가수에 최희준ㆍ배호ㆍ이상렬ㆍ조영남ㆍ나훈아가 선정되었다.(남진은 베트남전 징집으로 제외) 1969년 10대가수 청백전은 남진과 나훈아의 빅매치(대결)로 관심을 끌었던 1971년 10대가수 청백전 만큼이나 화제였던 대회다.
초미의 관심사는 1960년대의 마지막 가수왕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 이었다. 3연패를 노리는 이미자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전망되었고, 패티김ㆍ최희준ㆍ김상희가 가능성 높은 후보로 점쳐졌다. 마침내 집계가 끝나고 사회자가 1969년 가수왕을 호명했을 때, 객석은 놀라움과 환호성으로 어지러웠다. 쟁쟁한 선배 스타들을 제치고, 뜻밖에도 신인 듀오 펄시스터즈가 가수왕(최고인기가수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최고의 여성 듀오 펄시스터즈 ‘탄생’

1968년 12월에 발표되고 69년에 히트한 <님아>와 <커피한잔>은 펄시스터즈를 걸그룹 사상 최초의 가수왕으로 만든 대형 히트곡이었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 음반은 오디오(라디오, 텔레비전, 전축 따위의 소리 부분) 보급이 미미했던 당시로서는 믿기 힘든, 당시 집계로 100만 장에 육박하는 히트를 기록했다. 펄시스터즈 데뷔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며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1964년부터 창작 록을 시도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월남으로 떠나려던 신중현은 이 앨범의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신중현 사단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4박자의 트로트가 대세이던 시절, 펄시스터즈는 일렉트릭(전자)기타 사운드(소리)에 맞춰 영혼을 끌어안는 소울과 블루스, 절규하듯 내지르는 블루스 록 창법을 구사했다. 언니 배인순의 부드러운 중저음과 동생 인숙의 비음이 살짝 들어간 아름다운 고음 하모니는 절묘했다.
외모 면에서도 젊은이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세련된 이미지의 언니와 서구적 미모의 동생이 연출한 율동도 당시로선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했다. 또한 여성 디자이너 노라노가 만든 판탈롱(아랫부분이 나팔 모양으로 벌어진 여자용 바지) 열풍을 일으켰는가 하면 무대에 설 때마다 세련된 헤어스타일, 베레모ㆍ헤어밴드ㆍ미니스커트ㆍ핫팬츠ㆍ트위드재킷 등 패션 감각을 자랑했다.
이들의 등장은 단순히 노래로만 승부하던 오디오 중심의 가요계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스타 가수의 기본 조건으로 가창력에 화려한 외모까지 요구하는 ‘비디오 가수’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혜성같이 등장한 ‘신데렐라’ 김추자

1969년 신중현의 창작곡들로 데뷔한 김추자는 육감적인 춤사위와 창법으로 ‘솔(soul) 사이키 가요’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화제를 모았다. 민요창법과 싸이키를 버무린 듯한 창법의 <늦기 전에>, 사회 분위기와 맞아 떨어진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져서>가 큰 사랑을 받으며 데뷔음반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신인가수 김추자는 단숨에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르며 70년대 초ㆍ중반을 그녀의 시대로 예약했다.

‘소울’의 부침

1969년을 강타한 ‘소울(soul) 가요’란 어떤 음악이었을까. 한마디로 가수의 열창과 그룹사운드의 일렉트릭한 음향이 그 시절 소울 가요의 스테레오 타입이었다. 펄시스터즈, 김추자, 이정화, 양미란 등 당시 ‘소울 가수’들을 보면 우선 정제되지 않은 듯한 열창 스타일의 창법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맑다기보다는 다소 거칠고 육감적인 느낌을 준다. 비트(박자)가 강하고,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리듬이 특징인 일렉트릭 사운드로 1969년 폭발해 1970년 정점을 맞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울’은 흥행을 위한 음반ㆍ공연 선전문구로,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작곡ㆍ제작하는 방편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펄시스터즈와 김추자는 스타의 자리에 오른 후 신중현을 떠나 전속사를 옮겨 다니며 다른 스타 작곡가들에 의해 색깔을 잃어버리고 일관성 없는 행보를 걷게 되었다. 이후 소울은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1969년 대중가요

1969년은 가히 펄시스터즈의 해였다. 펄 자매는 <님아>, <커피 한 잔>, <떠나야할 그 사람>, <안녕>에 번안곡 <첫사랑>과 <비>까지 히트시키며 최고의 해를 보냈다. 패티김도 <서울의 찬가>, <사랑하는 마리아>, <사랑하는 당신이>, <뒷모습>을 발표하며 슈퍼스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고, 이미자는 <기러기 아빠>, <황혼의 부루스>를, 김상희는 <빨간 선인장>, <당신을 알고부터>, <어떻게 해>를 발표했다.
양미란의 <달콤하고 상냥하게>와 <흑점>, 김하정의 <사랑>과 <야생마>, 화니씨스터즈의 <생각해 보겠어요>와 <짬 좀 내줘요>, 신민요 여왕 김세레나의 <성주풀이>도 유행했고 조미미가 <여자의 꿈>으로 이름을 알렸다. 가을 노래인 <석류의 계절>(정은숙), <가을이 오기 전에>(이영숙), <주란꽃>(문주란), <별은 멀어도>(정훈희)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7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할 김추자가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로 데뷔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남진은 1968년 중반에 군에 입대해 1969년에 베트남전에 파병됐지만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징집 전과 휴가 때 취입한 노래 <미워도 다시 한 번>, <어머님>, <사람 나고 돈 났지> 등이 히트하며 군복무 중임에도 동양방송(TBC)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 대상을 차지했다. 배호는 <당신>, <만나면 괴로워>를, 신인가수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에 이어 <임 그리워>, <잊을 수가 있을까>의 히트곡을 내놓았다.
<아마도 빗물이겠지>(이상열), <사나이부르스>(배성), <사랑은 계절 따라>(박건), <첫사랑의 언덕>(박형준)도 사랑을 받았다.
조영남은 <딜라일라>, <내 생에 단 한 번만>, <최진사댁 셋째 딸> 등 번안곡만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송창식ㆍ윤형주 남성 듀오 트윈폴리오가 <하얀 손수건> 등 번안곡으로 젊은 층의 사랑을 받으며 70년대 청년문화의 탄생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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