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적이나 아름다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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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적이나 아름다운 정치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1.07.0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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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유난히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과거 이력을 앞세워 실력이 있음을 자부하는 사람이 있고 뜻을 내세우는 사람도 많다. 부류는 천차만별이나 돈이나 명예를 떠나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정치로 귀결된다.

편견일지 모르겠다. 실제로는 정치가 아닌 통치를 하고 싶은 모양새로 보는 건 기자로서도 거북하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정치'는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통치'는 나라나 지역을 도맡아 다스림으로 명시돼 있다.

비슷할지 모르나 정치와 통치에는 차이가 있다. 대중의 영향력이 ‘통치’에는 안 들어가 있다. 대중의 표로 인해 정치는 가능해지나 소수의 영향력에 다수가 휘둘리는 것은 분명 정치가 아니라 통치다.

기자는 정치에 대해 ‘합의를 거쳐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든 활동’이라 규정한다. 합의가 없거나, 제한 또는 용인되는 범위를 벗어난 권력은 통치의 요소로 보고 있다. 다스린다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어 통치라는 단어는 좋아하지 않으며 정치 또한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 호불호를 가른다. 인간적으로 친할 순 있어도 사상과 정책에 대한 비평은 모든 정치하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권력에 대한 감시는 선거나 감사 등 제도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각까지도 침해하는 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법에 의해 감시행위는 때로 위법성이 부여되곤 했다. 집회 신고제가 허가제로 바뀐 뒤 자유는 눈치를 봐야 했고 파업이라도 할라 치면 손해배상액부터 산출해야 할 정도가 됐다.

저항의 대가는 무섭다. 학생들이 대학 졸업장 강매를 거부할 배짱보다 대학졸업 이상으로 제한된 각 기업들의 채용조건 등 가방끈 짧은 사람으로 볼 사회의 시선은 더 견고하다. 지역에서는 어떠랴, 유망한 정치인을 비판하려면 주변인들의 싸늘한 시선을 비롯해 리그에서 소외될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횡포는 생활정치가 정착되지 못한 폐단을 낳는다. 기자는 근래에 만난 사람 가운데 다수를 강조하는 사람에게서 ‘조작된 다수’를 엿볼 수는 있었으나 잠재된 다수는 발견할 수 없었다. 진품이 있어 짝퉁이 있듯 ‘원칙 없는 가라’는 없다. 짝퉁정치는 통치에 다름 아니며 가라정치는 왜곡된 권력을 양산할 테다. 주민이 스스로 권력자가 되어 대소사를 결정할 때 비로소 진짜 정치다. 한 사람을 설득시키기 위해 다수가 노력할 때 민주주의의 횡포는 없어질 것이나 혹자는 그것이 비효율적이라 강변한다. 비효율이면 어떠랴, 정치하는 사람을 넘어 정치하는 사회라는 데서 희망을 본다면 그것은 충분히 효율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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