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순 할머니, 상촌마을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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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순 할머니, 상촌마을 노인회장
  • 김상진 기자
  • 승인 2019.11.21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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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초등학교도 못가
환갑에 글 배워 이름 쓰고
잘 자란 자식들에게 ‘감사’
▲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송성순 할머니.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송선순 할머니.
▲송선순 할머니 5남매 젊은시절.
▲큰 딸의 돌을 맞아 찍은 사진.

 

나는 유등 오교리에서 1942년 음력 6월 3일에 태어났습니다.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많은 이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모두가 그랬듯 우리 집도 가난했습니다. 여자가 공부를 하면 연애나 하고 놀러 다닌다는 이유로 국민학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엄격해 마을에 놀이패가 와서 공연해도 구경도 못하게 하여, 결혼하기 전까지 읍내도 한 번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 말이 법이었던 시절이라 부모님이 점찍은 신랑이 사는 이곳 상촌마을로 시집 왔습니다.
3남 1녀를 키우기 위해서 벽돌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논 스물다섯 마지기를 사서 농사 지어 4남매를 키웠습니다.
큰딸은 농협 직원이 되었고, 첫째 아들은 서울에서 버스 운전을 하고, 작은아들은 사업을 하고 있고, 막내는 군청 공무원입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몸이 성한 곳이 없습니다. 77살 나이에 안 아픈 사람이 드물겠지만, 대장암 수술을 받고 어깨, 다리, 허리 등 13번 수술을 했습니다. 내 몸도 몸이지만 아이들한테 참 미안합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면 학교 가기 전에 산에 올라가 나무하고, 나락 베는 고생도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많은 것을 해주진 못했지만, 자식들이 잘 자라줘서 감사합니다.
남편이 풍으로 9년을 앓아누웠고 그중 2년은 치매까지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한 남편을 보낸 지 15년이 지났습니다.
2002년에 한글을 배우고 싶어서 도전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 한글학교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서류가 준비되지 않아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하여서 땅바닥에 앉아서라도 글을 배우겠다고 사정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2004년까지 공부했습니다.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되고, 서울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 볼 수 있고, 식당 메뉴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했습니다.
점점 몸이 아프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자전거 타고 읍내까지 오가기 어려워, 더 나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마을노인회장을 맡아 할머니회관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마을 노인들과 해외여행도 다녀왔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남은 생도 마을 노인들, 자식들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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