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마한과 백제, 가야 문화가 공존했던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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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마한과 백제, 가야 문화가 공존했던 순창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11.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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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뜻밖의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지방정책 공약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포함시켰으면 좋겠다”라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가야사가 경남을 중심으로 한 영남의 역사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범위가 더 넓다. 가야사 복원은 아마 영ㆍ호남이 공동사업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어서 영ㆍ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으로 생각한다”라며 가야사 복원사업을 정책과제에 포함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금까지 국민은 고대국가 가야는 김해, 고령 등 영남지역에 존재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언급한 가야사 복원사업 추진 의도가 영호남 화합 차원으로 밝혀지면서 호남지역 가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30년 넘게 전북지역 가야사를 연구한 군산대 곽장근 교수에 따르면 전북지역 가야가 처음 알려진 시기는 1982년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확인된 가야유적은 장수ㆍ남원 등 전북 동부지역에서 발굴된 고분, 제철유적, 봉수(봉화), 산성 등이다. 가야의 지배자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430여 기다. 직경이 20m 정도로 큰 고분도 있고 운봉고원에서 180여 기, 장수군 일대에서 250여 기가 발견됐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했던 제철유적도 150개소 정도로 대규모였다. 봉수유적 30여 곳, 방어 시설인 고대산성도 10여 곳 발견됐다.
그중 가장 역사적 의미가 높은 것은 전북 동부지역이 철 생산지였다는 사실이다. 고대의 철은 현대의 석유처럼 현물경제의 중심이자 강력한 힘의 원천이었다. 또 다른 유물은 80여 곳의 봉화 유적이다. 봉화는 변방의 위급한 상황을 중앙에 알리는 통신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 봉화가 발견된 곳은 전북 동부지역뿐이다. 현재 발견된 봉화는 전북 무주ㆍ진안ㆍ임실ㆍ순창ㆍ남원ㆍ충남 금산까지 분포돼 있다. 그래서 가야 영역이 우리들 통념을 넘어 전북 동부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장수군은 가야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추진 중이다.
백제는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한성(지금의 서울 부근) 부근에서 건국한 후 경기ㆍ충청ㆍ전라도에 걸쳐 있던 마한(馬韓)의 영역을 차례로 접수해 갔다. 그리고 순창 등 섬진강 유역으로 진출했다. 마한 54개 소국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순창의 토착세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백제에 복속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백제 때 설치된 행정치소와 관련한 기록을 통해 5세기 후반을 전후해 순창 등 섬진강 유역이 백제에 편입된 것으로 추측된다.(백제는 515년 운봉가야도 정복한다.)
백제는 아직 영산강 유역을 지배하고 있던 마한이 순창 일대로 재진출하는 것을 저지하고, 가야가 백두대간의 소백산맥을 넘어 섬진강 유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는 백제 때 순창군 순창읍에는 도실군(道實郡), 적성면에는 역평현(䃯坪縣)이 설치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순창의 삼국시대 분묘 유적 중에는 백제계 유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까지의 지표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백제의 행정치소와 교통의 중심지에 규모가 큰 분묘 유적이 산재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순창읍 백산리와 신남리, 동계면 관전리에서 발견된 분묘는 백제의 행정치소와 관련된 유적으로 그 규모가 방대하다고 한다. 이처럼 순창은 남원 못지않게 삼국시대 분묘 유적의 밀집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백제가 당시 사통팔달의 교통중심지이자 전략요충지였던 순창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의 침공으로 백제는 수도 이전 등 정치적 불안과 혼란에 빠지면서 대내외적인 영향력을 잠시 상실한다. 바로 6세기 전반 순창 일대가 한동안 대가야의 영역에 편입된 것이 아닌가 싶다. 동계면 구고리와 현포리에서 늦은 시기의 가야토기가 출토된 것이 그 증거다.
순창은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섬진강과 호남정맥이라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문화적으로 ‘점이지대’(漸移地帶, 지리적으로 서로 두 지역의 특성이 공존하는 공간)의 성격을 오랫동안 지녀 왔다. 그래서 삼국시대의 순창은 마한과 백제, 그리고 가야 문화가 한동안 공존하기도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호남권의 유적 발굴과 문헌 연구를 통해 순창의 고대사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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