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보지 않은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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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보지 않은 이에게
  • 김수현 기자
  • 승인 2019.11.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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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앞둔 특수.
지난 한 달은 찹쌀떡이나 초콜릿, 청심원이 쉼 없이 구매되고,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너는 그 특수에서 벗어났을 테지. 주변에서 찹쌀떡을 나눠 먹었을 텐데, 누군가 하나쯤 너에게도 권했을 텐데, 받아든 네 마음은 어땠을까. 달았을까. 착잡했을까.
D-100.
초읽기(카운트다운)가 시작되던 날부터 네가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줄어들기 시작했을 테지. 너와 아무 상관이 없을 텐데,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다음 날은 또 하루가 줄어들었을 테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하루하루가 줄어드는 일을 바라보는 일은 어땠을까.
누군가 너의 허락도 받지 않고 너의 하루를 은행 잔액 빼가듯 훔쳐가는 듯해 어이없고 기막혔을까. 무심하게 빠져나가는 날들을 바라봤을까.
전국적으로 수능이 치러지던 날 아침, 지각생을 가까스로 태워다준 차량의 분투기와 부모들의 간절한 기도가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능 시험장에 있지 않은 너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수능이 끝나고, 수능에 대한 분석이 신문 1면을 차지하고, 수험표만 가지면 할인행사를 진행한다는 거리를 지나며, 수험표가 없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렸을까.
너는 어떠한 이유로든 대학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나의 가치는 점수화될 수 없다’며, ‘성적과 평가로만 치환되는 대한민국 교육에 균열을 내고자’ 대학입시를 거부한 당찬 18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로 대학 아닌 삶을 선택하였을 수도,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겠군. ‘대학’이라는 사치를 부리기엔 이미 고된 삶과 싸우고 있을 수도 있겠지.
오랜 시간 준비하고 이윽고 수능을 치른 학생들에 대한 지지와 격려가 쏟아지는 언론과 방송,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서 너 역시 그만큼의 지지와 격려를 받아야 하며,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그 많은 밤을 꼬박꼬박 새우며 ‘노오력’해온 수험생들의 시간과 똑같은 무게로, 네가 다른 선택을 하거나 혹은 선택을 당하며 쏟아온 너의 모든 밤, 학교 안팎을 거닐었던 걸음들 역시 축하받고 지지받아 마땅하다.
네 덕분에, 이 세상이 비소로 서로 다른 빛으로 빛날 수 있고, 네 목소리로 이 세상은 더 깊게 울릴 수 있게 되었다.
D-0, 초읽기가 끝난 오늘, 네가 묵묵히 혹은 갈지자로 디뎌온 그 발걸음이 달력에 없던 날을 열어젖히고 실은 네가 낸 발걸음으로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길이 생겼구나. 네 덕분에 낡아가기만 하던 이 세상이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났구나.
오늘 수능을 보지 않은 젊은 벗들. 고맙다.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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