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는 고교 졸업생은 지원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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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는 고교 졸업생은 지원하면 안 되나?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9.11.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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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시험’을 “다 찍고 잤다.” 수능이 끝난 고교 3학년 기말고사 풍경이란다. 대부분 학생이 문제를 읽지도 않고 책상에 엎드려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단다. 대학입시에서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성적을 반영하는 학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3학년 2학기 교실은 수시 쓰는 학생은 면접 본다고 수업을 안 듣고, 정시 공부하는 학생은 자습하러 독서실에 가서 텅 빈다고 한다.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된 현실이 반영된 볼썽사나운 풍경이다. 그래서 정시ㆍ수시를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을 떠나 그 자체로 완결된 의미가 있어야 한”다며 “정시ㆍ수시를 통합해 수능 이후 11월부터 전형을 선택하게 하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수능은 단순한 대학입시가 아니고 인생의 큰 고사가 되었다. 그래서 수능날은 날씨보다 마음 온도가 더 차갑다. 그런데 수능 보는 학생보다 더 차가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입시 대신 취업을 택한 특성화(실업계) 고교생일 것 같다. 같은 고3이지만 수험생 아닌 취업생은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란다. 수능 본 날 저녁, 서울 지하철 기관사가 수험생들을 다독여준 방송이 화제였지만, 공장 실습에서 온종일 기계를 만지고 기름때 묻은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귀가하는 특성화고 3학년에게도 위로가 됐을까? 한 통계에서는 고교 졸업생 열 중 셋(31%)이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대학에 가기 싫기보다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도 많다. 공부 못해서 ‘질’ 나빠서, 공고 다니고 상고 다니며 대학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온 세상이 수험생들의 ‘수고’만 주목할 때 특성화 고교생들과 학교 밖으로 나온 청소년들이 소외는 더 커진다. 수능을 치르지 않는 학생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관심 없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인가. 레스토랑과 놀이공원에서 수능수험표와 함께 납땜인두기, 기술자격증을 제시해도 할인받을 수 있는 공평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경향신문>은 2018년 1월 1일부터 2019년 9월까지 “떨어짐, 끼임, 깔림ㆍ뒤집힘, 부딪힘, 물체에 맞음” 등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 이름을 낱낱이 보도했다. 작가 김훈은 “이처럼 무서운 지면을 본 적이 없다”면서 “이것은 약육강식하는 식인사회의 킬링필드이다. 제도화된 약육강식이 아니라면, 이처럼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동일한 유형의 사고에 의한 떼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외면될 수는 없다”라고 분노하며 통곡했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출세’에 목멘다. 지역 학교에서도 ‘인(in)서울’ 실적을 자랑하고, 스카이(SKY, 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에 합격하면 펼침막을 걸어주며 축하한다. “수료생 중 43% 수도권대학 진학”을 자랑하는 옥천인재숙은 “인재숙을 수료한 우수 인재들이 성장해서 이루어나갈 나비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긴 “순창을 넘어 대한민국의 별”을 키우니 ‘출세’를 기준 삼지 않을 이유가 없겠다. 군은 올초 군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175명에게 대학진학 축하금 각 200만원씩 총 3억5000만원을 지급했다. 2018년 군내 3개 고등학교 졸업생이 240명을 웃도니 단순 계산해서 60명 넘는 졸업생에게는 대학 비진학을 이유로 군이,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 경감과 애향심 고취’을 포기했다고 비판하면 과도한가.
대학 진학하면 축하금 주고, 취업하거나 취업 준비하면 “입시 공부 안(못)한 네 탓”이라며 돕지 않는 것이 공정한가. 공정이란 모두가 차별, 반칙 없이 투명하게 경쟁하는 결과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재산이 얼마든, 일하든 말든 따지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까지 논의되는 마당에 무슨 ‘선별 복지’인 양, 대학진학 여부로 차별하는 일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기본소득은 불평등에 대항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의실현 조처다. 정의로운 분배를 위해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 대한 치우친 기준은 재고해야 한다. 대학진학축하금을 지급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사회 초년생의 생활도 돕자는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무관심과 소외라는 그늘을 거둬내고, 밑바닥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어쩌면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과도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혜택에 대해 경각심을 갖자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넘치니 그 능력을 작동시킬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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