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보는 드라마 ‘전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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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보는 드라마 ‘전원일기’
  • 김효진 이장
  • 승인 2019.12.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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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풍산 두지마을 이장

귀동이는 서울 변두리 막일을 그만두고 고향 양촌리로 내려왔지만, 아내가 집 나가고 노마 홀로 키우는 농촌살이가 만만치 않다. 종기 엄마로부터 노마 엄마가 재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잠자는 아들 녀석만 우두커니 내려다본다.
귀동이와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응삼이는 결혼할 생각조차 없는 거냐며 나무라는 홀어머니에게 달마와 같은 얼굴로 웃기만 한다. 어머니 무르팍 베개 삼아 듣는 어머니 지청구도 그저 자장가처럼 다감하기만 하니 그 속을 누가 알랴 싶다.
훗날 응삼이 배필이 될 동네 가겟집 쌍봉댁은 커피 자판기를 들여와 매출을 올려볼 생각이다. 부녀회와 청년회에 수익금 일부를 내놓겠다며 주민들의 동의를 얻었지만 김 회장은 끝내 반대입장을 고수한다.
마을에서 아버지 김 회장의 위신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자 큰아들 용진은 김 회장을 읍내 식당에 모셔 음식을 대접한다. 과거 농촌운동을 하며 존경받았던 김 회장도 어느덧 후세에 농촌의 미래를 맡겨야 할 나이가 되어버렸다. 큰며느리 은영과 함께 동네 초입까지 마중 나간 은심은 술에 취한 채 서로 부축하며 다가오는 부자를 보며 살포시 웃는다.
용식 엄니 은심은 어버이날에 큰아들, 둘째아들 네서 받은 용돈을 모아, 고생하며 젖소 키우는 막내 영애에게 챙겨줄 요량으로 며느리들 몰래 전화를 한다.
이를 단박에 눈치챈 용식이 처 순영은 동서 은영에게 고해바친다. 어버이날이라고 친정 부모에게 용돈 한 푼 쥐여줄 수 없는 처지인 자신에게, 되레 용돈 챙기는 친정엄마 때문에 속상한 영애는 다시는 친정에 안 온다며 울음보를 터트리고 만다.
마을 대소사 다 챙기는 마당발 부녀회장 종기 엄마는 나락 공판 날 받은 수매 대금을 노름판에서 잃고 들어온 종기 아버지에게, 사느니 못 사느니 쌍심지를 켜며 악다구니를 쓴다. 이내 손모가지를 잘라서라도 각심을 보이겠다며 낫을 들고 방에 들어서는 서방을 말리면서 종기 아버지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모면한다.
종기네, 숙이네와 더불어 밭매는데 일가견이 있는 복길네는 주변 눈총을 살만큼 부지런 떨지만, 여전히 궁핍하다. 하우스에 심은 여름 열무가 똥값이 되자, 읍내에 내다 팔아보자며 나선다. 헐값 가격흥정에 속이 상한 일용이는 처의 만류도 뿌리친 채 경운기에 다시 열무를 싣고 와 비닐하우스 옆, 거름 자리에 쏟아붓고는, 노을이 지는 밭둑에 앉아 애먼 가슴만 쥐어짠다.
쌀 수입 반대 서울 데모를 준비하기 위해 회관에 청년들이 모인다. 쌀값 폭락으로 청년들은 당장 내년 농사를 걱정한다. 농산물을 가공해서 팔아보자며 용식이네 논에 농산물 가공창고를 짓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김 회장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논이란 한 번 훼손되면 다시 복구하기 어렵다는 김 회장과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젊은 농사꾼들은 대책이 없지 않냐며 항변하는 용식이 사이에,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임차 논 주인이 논을 내놓으라 하자 일용이는 며칠째 잠을 설친다.
결국, 구들목 신세를 지고 눕자, 일용 처는 논 주인을 만나 통사정을 한다. 돌아오는 길에, 품 팔아 모은 돈으로 새끼돼지 한 마리를 사서 몰고 집에 와 일용에게 건넨다. 변변한 땅 한 뙈기 없는 일용네는 양돈에 뛰어든다.
광주학살 이후, 전두환 군사정권이 사납고 뒤숭숭한 민심을 억누르고 관리하는 방안의 하나로, 건전드라마와 건전가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원일기도 그렇게 탄생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차범석 극작가와 김정수 작가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농촌의 풍경을 그려내자, 바로 제재가 들어갔고, 한때는 농촌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채 목가적인 모습만 내보여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속 양촌리와 현재의 농촌은 삼십년을 훌쩍 뛰어넘어 경계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고단하고, 힘들고, 서럽다. 반대로, 유제(이웃)의 낮은 담이 높아져 ‘관계의 불편함’은 사라졌지만, 드라마처럼 정이 오가는 유대감은 찾기 힘들어졌다. 마을마다 꼰대 같지만, 바른말 하는 ‘김 회장’도 다들 돌아가 없고, 불뚝하고 거칠지만 효자인 ‘일용이’도 보기 힘들다. 어디 그뿐이랴, 누이 같고 연인 같은 김 회장네 큰 며느리 ‘고두심’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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