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17)/ 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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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17)/ 십분
  • 선산곡
  • 승인 2019.12.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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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참빗살나무 잎사귀가 수북하다. 거미줄도 보인다. 실내 타일 바닥에 담을 쌓고 그 안에 채운 흙에 심은 나무들도 계절을 아는 것 같다. 급조한 실내 화단에 물을 주는 용역이 들렀다가 갔는지 흙이 촉촉하다. 작은 전동청소차가 타일 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늘 그 시간이다. 전동청소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흡사 임꺽정처럼 덩치가 크다. 조금 먼 곳에서 전산 수납을 돕는 자원봉사자가 힐긋 나를 스쳐본다.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어느 날 혼자 간 내게 그렇게 말한 자원봉사자. 그녀가 나를 안다.
캐럴이 들린다. 팻 분과 호세 펠리시아노의 캐럴이 익숙했다. 내 장식장에 지금도 그 레코드가 들어있을 것이다. 예전에 12월이면 거리에서 캐럴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저작권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아무런 음악도 틀지 못한단다. 저작권이 보호받는 것을 시비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각박하다는 생각은 떨치기 어렵다. 에프엠 방송의 다시듣기가 그 때문에 완전폐지되었으니 내 삶 즐거움 일부분을 빼앗긴 셈이다. 유명 커피집이나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 흐르는 음악도 다 회사가 부여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변두리 찻집에 엘피를 틀어주는 집이 있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는 요즘 세상. 어느새 12월이다. 어느 해 ‘생각을 접어두고 이젠 카드나 그려야겠다.’라는 졸시를 썼다. ‘생각을 접어둔’다는 그 앞에 ‘그리운 사람’인지 ‘미워하는 사람’인지 분명히 기억할 수 없으니 세월은 많이 흘렀나 보다.

구급대원 일행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몰려온다. 다섯 명, 모두 제복을 입었다. 남자 넷 여자 하나. 아가씨가 지니고 있을 업무의 긍지가 든든해 보인다. 그중 한 사람이 주문대 앞에서 손사래를 친다. 자기 커피는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원래 안 먹어요.”
두어 번 반복하는 목소리가 크다. 먹지는 말고 마셔나 보시지. 그에게는 커피가 무슨 원수라도 되는가 싶은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커피에 지나친 경계를 했던 사람이 있었다. 잘 있겠지. 내게 커피 마시는 모습이나 한번 보여주고 떠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 생각을 지우듯 커피콩이 분쇄되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커피점이든 그 소리가 이젠 익숙하다.
“따듯한 커피 네 잔 나왔습니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면서 하는 말이다. 네 잔이 아닌 넉 잔이라고 하면 좋을 텐데. 석 잔, 넉 잔, 석 달, 넉 달이란 말이 요즘 없어졌다.
“어머니.”
출입구 앞에서 젊은이가 부르는 소리에 한 아주머니가 돌아선다. 그 몸짓을 보는 순간 그들의 관계를 얼른 알아차린다. 편한 듯 편하지 않은 사이, 아들이 아닌 사위다. 옛날에 내 직장 상사가 했던 말이 있었다.
“자기 사위보고 야, 야 하는 장인은 말이지. 천하에 말이지.”
‘말이지’ 뒤에 했던 평가를 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왔다. 편하지만 어려워하는 관계가 백년손님이다. 사위에게 하대는 절대금물이다.
“응. 왔능가.”
근심의 자리에 찾아온 사위를 대하는 장모의 대꾸와 몸짓이 조심스럽다. 커피집 10분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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