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46) 세월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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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46) 세월이 가면
  • 조경훈 시인
  • 승인 2019.12.17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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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아원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전쟁터 짙은 표면 속에서도 꽃은 피듯, 포탄이 휩쓸어버린 폐허의 도심 속에서도 애틋한 사랑은 있었나 보다. 누구였던가? 세월이 가면 모두 잊기 마련인데 이 시를 쓰게 한 그 여인은…. 어쩌면 전쟁 중에 잠깐 만난 여인을 생각게 하는 통속적인 사랑을, 소시민적인 감상과 낭만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갖게 하는 지성과 교양이 이 시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특히 전쟁 중에 만나 잠깐 나눈 사랑이 명작이 되어 남는 예도 있지만, 당시 6.25의 참혹한 시련 속에서 다시 새 희망을 노래하듯 ‘그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라고 노래했으니 실의에 빠진 많은 소시민에게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이 시는 6.25 전쟁 속에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많은 젊은이에게 비상한 호소력으로 당시나 지금도 많이 애송되고 있다. 도시적인 감성과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추억과 함께 어우러져 지금도 노래로 많이 애창되고 있지만, 박인환 시인은 당시의 모더니즘의 시류 속에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고자 노력하면서 시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강조하는 시를 쓰다가 31세라는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 시는 지금도 남아 애송되고 있다. 그 눈동자 그 입술은 지금도 우리 가슴에 있다.

*박인환(朴寅煥, 1926~1956) 강원도 인제 출생. 저서로 1955년에 낸 박인환 선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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