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로트와 송가인, 송년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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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로트와 송가인, 송년음악회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12.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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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올 한 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핵심 단어) 중의 하나는 ‘뉴트로’였다. 뉴트로(new-tro)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다.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을 말하는 이 현상은 대중음악에서도 일어났다. ‘노땅들’의 음악만으로 치부됐던 트로트가 젊은 세대들의 관심까지 얻으며 중흥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트로트(trot) 음악은 일본 엔카(演歌)의 ‘요나누끼’ 음계(7음계 중 ‘파’와 ‘시’를 뺀 도ㆍ레ㆍ미ㆍ솔ㆍ라의 5음계만 사용하는 음계)와 4분의 2박자 리듬체계에 기초한,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이식문화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라고 해서 우리 대중음악이 아니라고 규정할 필요는 없다. 시작이 어떠했건 트로트는 그동안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동반자로서 지금도 여전히 기성세대들을 장악하고 있는 강력한 대중음악이다.
흔히 트로트는 천편일률적이고 과거만 답습해온 음악 장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트로트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음악 내적인 변화를 꾀했고, 새로운 창법을 선보이고, 새로운 감수성의 노랫말을 내보이는 등 지속적으로 사회 변화와 보조를 맞춰 왔다.
일제강점기 지속적인 반복과 학습을 통해 우리의 노래로 정착되기 시작한 트로트는 193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에서 그 한국적 원형이 완성된다. 이후 이미자는 1964년 <동백아가씨>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멍이 들게 할 정도로 꿈틀대는 보컬(목소리, 가창)을 선보였으며, 배호가 보여준 새로운 도시적 감성의 트로트 보컬, 남진의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이 강한 보컬에 이어 나훈아는 거칠면서도 힘 있는 꺾기창법으로 또 한 번 트로트 보컬의 질적 발전을 이룩했다.  
트로트는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중음악에서 그 절대적 영향력을 상실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이전의 비극성을 거의 제거하고, 유흥의 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흥겨운 노래로 바뀌었다. 이제 21세기에 트로트라는 말은 특정한 양식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올드패션’의 노래 경향을 통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런데 2019년, 트로트가 다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계기는 모 종편 예능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이었다. 지난 2월말부터 5월초까지 방송된 ‘미스트롯’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 열기는 방송 종영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 흥행 대박의 중심에 걸출한 여가수 송가인이 있다. 송가인은 ‘미스트롯’ 방영 3개월 만에 존재감을 각인시키더니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마다 시청률이 치솟고, 공연장은 올 매진을 기록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청소년들이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아이돌에 열광하듯 송가인은 중장년층이 주도하는 음악적 소비패턴을 새로이 형성하면서, 이미자에서 주현미로 이어지는 트로트 여왕 계보를 물려받을 연예계의 대형스타로 떠올랐다.
송가인은 세미트롯이나 발라드도 아닌 흘러간 옛 노래를, 그것도 리메이크도 아닌 촌스런(?) 원곡을 그대로 부르며 활화산처럼 내뿜는 가창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8년간의 무명생활을 이겨내며 이른바 ‘흙수저’가 ‘용’이 되는 극적인 스토리를 보여줬다.
어제(12월 17일) 향토문화회관에서 송년음악회 공연을 관람했다. ‘미스트롯’에서 송가인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정미애를 비롯해 제1회 순창 전국 성악 콩쿠르 대상 권경민 등 총 10개 팀이 출연한 감동적인 무대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들 못지않게 복흥 한들농악단, 초등생  댄스팀 ‘엔젤’, 중ㆍ고생 댄스팀 ‘립업’, 듀엣 ‘온새미로’, 래퍼 강성균 등 순창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꽤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순창은 서편제의 창시자인 박유전, 동편제의 명창 김세종, 장재백, 장판개, 박복남 등의 소리꾼들을 배출한 판소리 본향이었다. 또한 <고향역>ㆍ<옥경이> 등을 작곡한 임종수, <얼굴>을 부른 포크송 가수 윤연선, 탈렌트 신신애와 임현식, 영화배우 윤양하 등을 배출한 예향이기도 하다.
미래의 스타를 꿈꾸며 정진하다가도 ‘스타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에 수없이 좌절했을 실력 있고 끼 넘치는 순창의 예능인들을 생각해 본다. 물론 아무리 기본기를 갖췄어도 대중매체에 노출될 기회나 평가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애초 스타로 부상하기 힘든 법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실력만큼 확실한 경쟁력은 없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재능과 실력이 빼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말이다. 송가인의 경우도 혹독한 연습과 타고난 가창력으로 기나긴 무명의 설움을 이겨내고 신화를 창조하며 모든 이의 가슴을 적셨다. 이러한 성취를 순창의 흙수저라고 못할 게 무엇이겠는가? 자기 분야에서 끝없이 칼을 갈며,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해서도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도전 정신만 갖추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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