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사벽/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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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사벽/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9.12.2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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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 집 가, 徒 무리/다만 도, 四 넉 사, 壁 벽 벽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206

《사기》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 나온다. 집에 있는 것이라곤 다만 네 벽뿐이다.
그는 대학 4학년 여름 구식 전용 열차에 우연히 합석하게 된 한 노부부와 인연이 되어 그분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 그 집에 과년한 딸이 있어 자연스레 1년여 동안 사귐을 갖게 되었다. 임관 후 1년, 본격적인 혼담이 오갈 무렵, 이분들이 갑자기 딴소리하였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딸이 자네한테 부족한 것 같네.”
그들의 딸은 꼭 그와 결혼해야 한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그는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안 하겠다며 그 집을 빠져나왔다. 몇 년 후, 그분들이 아들의 병역문제로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이미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탄탄하게 자립을 한 그의 모습을 본 부부는 돌아가는 길에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그때 우리가 생각을 잘못했어. 자네 집이 시골에다가 가난한 것만 생각하고…. 지금도 그 애는 아예 시집을 안 가겠다고 버티고 있네.”
그 부부는 당시 몰래 그의 시골집을 가보고 자기 딸이 그 집에 시집가면 큰 고생을 할 거라는 걱정이 앞섰다. 가난한 시골 촌구석에 논 몇 뙈기에 줄줄이 동생이 다섯이나 줄줄이 딸린 ‘가도사벽’한 집에 딸을 맏며느리로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전한시대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격검(擊劍)을 배웠다. 그는 인상여(藺相如)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이름을 상여로 바꾸었다. 재물을 바쳐 낭(郎)이 되었으나 달가워하지 않다가 얼마 후 그만두고 고향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난한 그가 특별히 업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던 차에, 평소 사이가 좋았던 임공(臨邛)의 현령인 왕길(王吉)이 사마상여의 능력을 인정하고 공경하여 같이 지냈다. 이때 그곳의 대부호 탁왕손(卓王孫) 등이 사마상여의 소문을 듣고 왕길을 초청하는 연회를 열었다. 현령이 상여에게 함께 가기를 간곡히 청하므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따라나섰다.
왕길의 요청으로 사마상여가 거문고를 타게 되었는데, 탁완손의 딸로 당시 과부였던 문군(文君)이 문틈으로 그를 엿보다가 마음이 끌려 반하였다. 상여도 문군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둘은 그날 성도로 야반도주하였는데 그의 집은 네 벽만이 서 있을 뿐(家居徒四壁立)이었다.
탁왕손은 크게 노하여 문군을 자식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재산을 한 푼도 나눠 주지 않았다. 결국, 문군이 말과 수레를 다 팔고 친정 동네인 임공으로 가서 술집을 차리게 되었다. 그녀는 술을 팔고 상여는 머슴들과 허드렛일을 하면서 주점 일을 도왔다. 탁왕손은 딸이 술을 파는 것이 부끄러워 문밖출입을 하지 않다가 어쩔 수 없이 문군에게 노복 100명, 100만 전(錢)의 돈, 시집갈 때 주려고 준비했던 살림을 나누어 주었다. 문군은 사마상여와 성도로 다시 돌아가 밭과 집을 사서 부유하게 지냈다.
상여가 젊은 시절 양나라에서 학자들과 같이 교유할 때에 《자허부(子虛賦)》를 지은 일이 있었는데, 무제(武帝)가 이를 읽고 칭찬하면서 사마상여를 도성으로 불러들여 벼슬을 내렸다. 사마상여는 비로소 장인인 탁왕손으로부터 대접을 받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무제에게《자허오유(子虛烏有)》를 지어 풍간(諷諫)하는 등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였다. 이로써 상여는 낭관이 되고 후에 많은 공로를 세워 무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궁정문인으로 재능을 마음껏 펼쳐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이 성어는 훗날 집안이 빈한하고 가난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기실 가난한 사마상여의 출세를 그린 고사이었지만, 탁왕손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마상여는 한심한 사위였고 문군은 미운 딸이었다.
지난봄, 딸애가 남친을 데려왔을 때, 우리가 눈여겨본 것은 물론 그의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지만, 내적으로는 그의 경제적 능력이었던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누워 잘만한 집과 일정 수입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앞가림도 못 하고 자존심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위를 어느 부모가 두고 싶겠는가.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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