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부터 6ㆍ25까지 깊은 상처 잊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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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부터 6ㆍ25까지 깊은 상처 잊혀져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1.07.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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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지리산, 북쪽 모악산 손에 잡힐 듯

▲ 회문산 깃대봉

폭포와 여유로운 산책길을 갖춘 덕에 강천산이 사람들에게 두루 인기를 얻는다면 회문산은 산이 험해 오르기는 조금 벅차나 역사적 상징을 띤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산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는 무학바위를 비롯해 크기가 일정한 공룡발자국도 볼 수 있고 빨치산 사령부에 얽힌 안정리 주민들의 슬픈 가족사도 엿볼 수 있다.

임실군과 경계로 있는 회문산은 최고봉인 장군봉을 기준으로 동으로는 깃대봉, 서로는 투구봉이 있고 남북으로는 높이가 엇비슷한 봉우리가 이어진다. 시계는 동쪽으로 지리산 자락부터 남서쪽으로는 무등산을, 북으로 모악산을 볼 수 있다. 모두 직선거리 40킬로미터(km) 이내로 이정도면 조금 보태어 맑은 날은 손에 잡힐 듯하다.

회문산은 안정리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올라가는 모양새다. 주요 등산로는 회문산 자연휴양림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뉜다. 임실에서 바라볼 때는 깎아지른 듯 급격한 경사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연 없는 명산은 없듯 회문산은 그 산세 때문에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산세가 험하다는 것은 요새를 이루는 조건 중 하나인데 이에 더해 군에서 바라볼 때 섬진강을 등지고 있고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초입까지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천혜의 요새인 셈이다. 이 때문에 조선말에는 동학군의 격전지가 됐고 여순항쟁이 발생할 당시에는 이미 이곳에 빨치산 단원 일부가 자리를 틀었다. 그리고 6ㆍ25 전쟁 때는 아예 빨치산 사령부가 옮겨왔고 토벌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공방전을 벌였던 빨치산의 수는 최대 1만 명에 달했다.

안정리 주민들은 이 때문에 뜻하지 않은 희생자가 됐다. 안정리 주민들은 ‘통비분자’, ‘친공세력’이란 누명을 벗지 못하고 남성들이 토벌군에 의해 한꺼번에 30여명이나 처형되기도 했다. 양민학살 위령탑이 세워진 때는 전쟁이 끝나고 50여년이 지나서였다.

사연이 이렇다보니 회문산은 그냥 가벼이 걸을 수만은 없는 묘한 느낌을 준다. 글쎄다. 알고 다르게 보이듯이 여기저기에 전쟁의 상흔이 얼룩진 것 같아서일까.

어쨌든 자연휴양림으로 지정이 되고 야영과 숙박시설이 들어선 이후 회문산은 방문객들이 보다 편한 등산을 할 수 있도록 변모했다. 회문산에서 볼 수 있는 참나무의 종류를 알기 쉽게 정리한 푯말도 생겼고 옥선대에 오르면 깊은 산세와 탁 트인 전경에 취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철제로 연결된 출렁다리에서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다만 흔들림을 더해서 즐기지는 말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등산로는 장군봉과 헬기장 중간에 위치한 자연휴양림 안에서 출발하는 길이 일반적이다. 이 외에도 임실 덕치면사무소, 일중교에서도 오를 수 있지만 이곳에서 장군봉을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산은 육산이어서 대체로 오르기는 수월하나 장군봉만큼은 인내가 필요하다. 숙박은 자연휴양림 내 숲속의 집을 비롯해 휴양림 입구에 여러 숙박시설이 있어 용이한 편이다.

마지막으로 등산리본도 때론 환경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쓰레기는 되가져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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