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의 아버지는 북부여 왕 해모수인가? 동부여 왕 금와인가?
상태바
주몽의 아버지는 북부여 왕 해모수인가? 동부여 왕 금와인가?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1.08 1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보는 우리역사(5)
주몽 신화 ‘분석’

고구려 시조 주몽에 관한 신화 기록은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고려 때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은 지금은 전하지 않는 《구삼국사(舊三國史)》의 내용을 인용해 놓은 것이다. 해모수와 하백의 도술 대결,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할 때 유화부인의 역할, 주몽과 비류국왕 송양의 대결 등 흥미로운 신화 소재를 폭넓게 갖추고 있다.
다음은 주몽 신화의 내용 일부다.

천제(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북부여 왕 해모수는 웅심연 물가에 놀러 나온 하백의 맏딸 유화(柳花)와 통정한다. 해모수는 하백에게 유화와의 혼인을 요청하고, 해모수와의 변신술 대결에서 패한 하백은 혼인을 허락한다. 그런데 해모수는 싸움까지 벌여서 얻은 유화를 버리고 행방을 감춘다. 하백은 크게 노해 시녀 몇 명을 붙여, 유화를 우발수(優渤水)로 귀양 보낸다. 이후 동부여 금와왕이 우연히 우발수로 나들이 갔다가 유화를 만나, 그녀를 궁궐로 데려왔다. 그런데 햇빛이 그녀를 비춰 몸을 피해도 좇아가며 비췄다. 유화는 이로 인해 잉태해 큰 알 하나를 낳았다. (중략) 어미가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기골이 영특해 7세에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했다. 이에 아이의 이름을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인 ‘주몽’이라고 지었다. 주몽은 대소 등 왕자 7명 보다 능력이 출중해 그들의 시기를 받았고, 왕자들은 호시탐탐 그를 죽이려 했다. (후략)

주몽 신화를 보면 주몽은 북부여 왕 해모수(解慕漱)의 아들 같기도 하다. 광개토태왕 비문에도 “시조 추모왕(주몽)께서 나라를 세우셨는데 (왕께서는) 북부여에서 나오신 천제의 아드님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주몽은 사생아로 태어나 의붓아버지에 의해 키워졌거나, 또는 동부여 금와(金蛙)왕의 서자(후궁 유화부인의 아들)로 볼 수 있다. 주몽이 금와왕의 왕자들과 같이 궁궐에서 생활했고, 어머니인 유화(柳花)는 별궁에서 살다가 동부여 태후의 격식으로 장례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주몽 신화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고 주몽의 혈통과 능력을 신성화한다. 이를 위해 먼저 부여계 민족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천신의 권위와 혈통을 끌어들인다. 즉, 주몽은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를 아버지로 삼는다. 해(解) 씨는 주몽의 성인 고(高) 씨와 혈통이 다른 고구려 지배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 된 것은 천제의 권위와 해 씨 집단의 힘을 동시에 끌어들이려는 계책에 따른 것이다. 주몽은 해모수만이 아니라 하백계 집단도 끌어들인다. 왕의 시비(하녀)가 햇빛에 의해 임신한다는 부여계 전승이 있지만, 유화는 단지 시비가 아니라 물의 신(水神) 하백의 딸로 자리매김 되어 송화강과 압록강 수신을 숭배하는 또 하나의 세력을 신화를 통해 통합한다.
주몽의 신성한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주몽 신화’는 몇 가지 점을 더 부각 시킨다. 무엇보다 주몽은 명사수이다. 고대사회에서 활쏘기 능력은 영웅의 핵심적 징표였다. 주몽은 어려서부터 명사수, 곧 주몽이란 이름을 얻었다. 성장기에는 동부여 왕자들의 질시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탁월한 사냥 능력을 뽐냈으며, 동부여를 탈출해서는 유화가 보낸 비둘기를 쏘아 보리종자를 얻었고, 나라를 세운 뒤에는 백 보 밖에 옥가락지를 놓고 쏘아 비류국 왕 송양을 굴복시켰다. 주몽의 활은 군사적 능력의 상징이다. 주몽은 부여 군사들에게 쫓긴 엄리대수(奄利大水) 앞에서 ‘천제의 손자, 하백의 외손’이라는 일종의 주문을 외우면서 활로 물을 쳐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게 한다. 이때의 활은 종교적 능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주몽은 또 지혜로운 사람이다. 일찍이 준마를 알아보고 그 말의 혀뿌리에 바늘을 꽂아 여위게 하여 금와왕에게 그 말을 얻는다. 주몽은 신하 부분노로 하여금 비류국의 북과 피리를 몰래 가져오게 한 뒤 색을 검게 칠해 오래된 것처럼 만들고, 궁실을 썩은 나무로 지어 오래 묵은 것처럼 보이게 하여 도읍의 선후를 따지며 비류국 왕의 입을 막는다. 이같이 여러 국면에서 주몽이 신성화됨으로써 고구려 건국은 종교적ㆍ역사적 정당성을 얻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쌍치의용소방대, 대만에서도 ‘불 꺼’
  • 2020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 ‘등록’
  • 체육회장 선거…28일, 향토회관에서
  • 구리남양주순창향우회 ‘송년의 밤’
  • 양영수 체육회장 당선
  • 행복주택 입주자 2차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