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48) 국토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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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48) 국토서시
  • 조경훈 시인
  • 승인 2020.01.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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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아원(兒園)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국토란 무엇인가? 우리의 땅, 내 땅이라는 의미다.
하늘이 혼(魂)이고 땅이 백(魄)이라면 땅은 우리의 몸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흙에서 나왔고, 흙에서 나온 것을 먹고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만약 나라를 잃는다면 나를 잃은 것이 되고 내가 죽은 뒤에도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국토를 한치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모진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고 끝까지 내 국토를 지켜냈다.
이 절대적인 순수의 국토 위에서 온갖 허구와 폭력성이 난무하는 것을 시인들은 그냥 두고 보지를 않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온갖 쇠붙이는 가라’(신동엽), ‘아무리 가난에 찌든 시련이 있을지라도 나는 거룩한 산삼(山森)을 밟고 부절히 서 있노니’(신석정), ‘풀은 바람이 불면 누웠다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김수영) 라고 시인들이 외쳤으니 여기 이 땅을 밟고 사는 조태일 시인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70년대 유신독재의 칼날 앞에서 ‘다 닳아진 살결’, ‘일렁이는 피’, ‘허연 뼈까지 통째로 보탤 일이다’라고 저항시를 발표하면서 다섯 차례의 옥고를 치르고 이 땅의 민주화, 통일 운동, 민족 문학 창달에 기여 할 굵직한 족적을 남긴 그는 1999년 9월에 타계했다.
시인은 생전에 시로 말했다. ‘풀씨가 날아다니다 / 멈출 곳이 없어 언제까지나 떠다니는 골목 그 곳이면 어떠리 / 그 곳이 나의 고향 / 그 곳에 묻히리’라고 했는데 지금은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 묻혀있다.

*조태일(1941~1999) 전남 곡성 출생, 식칼론(1970), 국토(1975) 등의 시집이 있으며 민중적 연대감을 이어주는 참여시를 주로 썼다. 전남 곡성에 조태일 문학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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