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의 대중가요와 한국사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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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의 대중가요와 한국사회 ①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1.0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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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와 함께 살펴본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16)
▲남진 <임과 함께> 앨범.

 

1972년은 새마을운동과 유신체제로 상징되는 해다. 1972년 4월 11일 정부는 새마을운동 계획안을 채택했고, 21일에는 <새마을노래>가 탄생했다. 그해 7월 4일 ‘7ㆍ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며 국민에게 통일의 환상을 심어준 박정희 정권은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으로 헌정을 강제로 중지시키고 친위 쿠데타를 단행했다. 겨울 공화국, 유신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10월유신을 앞두고 국민의 ‘군기’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장발ㆍ미니스커트 등을 퇴폐라는 이름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단속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했다. 라디오나 티브이 프로그램은 안보 방송 위주로 개편됐고, 도서잡지윤리위원회는 주간지의 ‘운세 풀이’ 게재가 교통사고ㆍ사업실패ㆍ가정불화를 아무런 근거 없이 예언해 불안감을 일으킨다며 중지시켰다. 밤새 춤을 추는 고고 족들을 경찰이 덮쳤고, 급기야 10월 12일 양택식 서울시장은 서울 시내 모든 유흥업소에서 고고 춤을 금지했다. 선정적ㆍ자극적 음악으로 퇴폐풍조를 일으킨다는 이유였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2월 22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 방문해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7월 13일 김대중은 외신구락부 기자회견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제창했다.

<임과 함께>ㆍ<고향역>ㆍ<여고시절>ㆍ<이별> 등 히트

1972년 가요계의 화제 중 하나는 오아시스레코드사 소속이었던 나훈아가 맞수 남진이 소속된 경쟁사 지구레코드사로 전속을 옮기며 박춘석 사단에 합류한 것이었다.
나훈아는 전 소속사 오아시스와 현 소속사 지구의 판매 경쟁에 힘입어 20여 종의 디스크를 내놓았다. 박춘석에게 선물 받은 <물레방아 도는데>와 <감나무골>, 전 소속사 오아시스에서 내놓은 <고향역>ㆍ<머나먼 고향>ㆍ<흰 구름 가는 길>ㆍ<해변의 여인>ㆍ<찻집의 고독> 등이 크게 히트하며 상반기에는 남진을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12월 24일자 일간스포츠가 집계한 자료에는 <임과 함께>가 이 모든 노래를 뒤엎고 1위에 올라선다. 일간스포츠 음반 판매 집계 1위는 <임과 함께>(남진)였다. 이어 <머나먼 고향>ㆍ<물레방아는 도는데>(나훈아)ㆍ<공항의 이별>(문주란)ㆍ<목화아가씨>(남진)ㆍ<흰 구름 가는 길>(나훈아)ㆍ<여고시절>(이수미)ㆍ<연포아가씨>(하춘화)ㆍ<고향이 좋아>(김상진), <보리밭>(문정선)이 2위에서 10위에 올랐다.
이밖에 유행한 트로트 계열 노래에는 <아랫마을 이쁜이>(남진), <고향의 강>(남일해), <여로>ㆍ<섬처녀>(이미자), <단골손님>ㆍ<사랑은 장난이 아니랍니다>(조미미), <영암아리랑>(하춘화), <달타령>ㆍ<달과 함께 별과 함께>(김부자) 등이 있었다.
<미련>(장현), <길 잃은 사슴>(김세환), <라라라(조개 껍질 묶어)>(윤형주), <그 애와 나랑은>(이장희), <언덕에 올라>(투코리안스), <모닥불>(박인희), <아름다운 것들>(양희은), <산까치야>(최안순), <새색시 시집가네>(이연실), <짝사랑>ㆍ<아빠는 엄마만 좋아해>(바블껌) 등의 포크송도 사랑을 받았다.
팝계열의 노래로는 <여고시절>(이수미), <당신의 마음>ㆍ<그대 변치 않는다면>(방주연), <이별>(패티김), <빗속의 여인들>ㆍ<좋아서 만났지요>ㆍ<진실>(정훈희), 김추자의 <소문났네>ㆍ눈이 내리네(번안곡), <나의 노래>(문정선), <개여울>ㆍ<그리운 생각>(정미조), <팔베개>ㆍ<잊지 못할 연인>(김상희), <그 얼굴에 햇살을>ㆍ<달맞이꽃>ㆍ<친구>(이용복), <옛님>(트리퍼스) 등이 히트했다.

남진ㆍ나훈아 두 번째 대결…시민회관 화재

나훈아는 몸은 지구로 옮겼지만, 오아시스의 맞불 작전으로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로 기록되며 최대 수혜자가 된다. 그리고 9월 20일 열린 동양방송(TBC) 주최 ‘방송가요대상’에서 남자가수상을 수상한다. 나훈아가 남진을 제치고 거머쥔 유일한 상이었다.
이어 12월 2일 문화방송(mbc) ‘10대가수청백전’이 열렸다. 남자가수에 남진ㆍ나훈아ㆍ이상열ㆍ김상진ㆍ이용복, 여자가수에 김상희ㆍ문주란ㆍ정훈희ㆍ조미미ㆍ하춘화가 선정되었다. 신인상은 김세환과 정미조가 수상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 관계자들을 몹시 당황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나훈아가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 시각 월남 퀴논의 한 부대에 있었다. 나훈아는 <임과 함께>의 대 히트로 남진과의 대결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행사 이틀 전에 출국해버린 것이다.
10대 가수 청백전이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최다 득표를 받은 ‘최고인기 가수상’의 주인공 남진이었다. (남진은 다음 해에도 ‘최고인기 가수상’을 수상하며 나훈아와 라이벌대결에서 완승을 거둔다.)
저녁 8시 28분, 남진이 최고인기 가수상으로 발표되어 박수를 받던 중 시민회관이 화염에 휩싸였다. 이 화재로 53명이 사망하고 7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건물 중 소강당을 제외한 3000여 평을 모두 태운 뒤 2시간여 만에 진화되었다. 시민회관 화재는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974년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1970년대 서울시 3대 화재 사건 중 하나다.
시민회관 좌석 수는 대극장만 무려 3004석이었다. 현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음악당)이 2523석이고 오페라극장이 2305석,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1500석,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객석이 3022석이다. 지금의 공연장들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큰 공연장이었다.
그날 밤, 한국 대중음악공연의 전당이였던 시민회관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후 이 자리에 서게 된, 세종문화회관은 이름부터 거룩하게도 ‘세종’이었고 건물은 신전처럼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드러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 대중음악 가수와 코미디언들은 이 무대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고향역>, 숨겨진 이야기

<고향역>을 만든 작곡가 임종수는 순창읍 출신이다. 이리(익산) 남성고를 졸업한 뒤 가수가 되기 위해 상경했다가 작곡가로 진로를 바꿨다. 이 노래는 1971년 처음 발표 당시 제목이 <차창에 어린 모습>이었다. 그러나 ‘불건전’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여 방송 한 번 타지 못한 채 묻히고 만다. 금지곡 리스트에 오른 이후 나훈아가 이 노래 멜로디가 아까우니 가사를 바꾸고 리듬도 트로트에서 고고로 바꿔 다시 녹음하자고 제의한다. 임종수는 학창시절 기차로 통학하던 이리역(익산역) 기찻길 옆에 피어있던 코스모스와 고향 순창에서 흠모하던 한 여학생(노랫말 중 ‘이뿐이’)을 소재로 한 <고향역>으로 제목과 노랫말을 바꾼다. 그러나 이마저도 묻히고 말았다.
1972년 나훈아가 오아시스에서 경쟁사인 지구로 전속을 옮기며 박춘석 사단에 합류했다. 당시 음반 시장 구조는 빅 히트되는 음반이 있어야 총판에서 다른 음반들도 받아주는, 일종의 ‘끼워 팔기’식 구조였다. 따라서 지구가 주도권을 잡으면 오아시스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만큼 오아시스 입장에서는 사운이 걸린 문제였다.
위기의식을 느낀 오아시스 측은 묘수를 구상했다. 전국 방송국 피디(PD)들에게 긴급 설문을 돌렸다. 나훈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취입곡 중에서 히트 가능성 있는 노래 ‘베스트 10’을 골라달라는 것이었다. 베스트 10 중 1위가 <고향역>이었다. 오아시스 측은 곧바로 <고향역> 등 나훈아 독집 음반을 내놓았고, 가을이 되자 전국에 <고향역> 노래가 울려 퍼졌다. 급격한 이농 현상으로 객지를 떠돌던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나훈아 <고향역>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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