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쟁보다 무서운 역병과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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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쟁보다 무서운 역병과 혐오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2.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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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창궐한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갔다는 흑사병, 18∼19세기의 콜레라, 20세기의 스페인 독감과 에이즈, 여기에 얼마 전 유행한 사스(SARS)와 조류독감(AI), 신종플루, 메르스에 이어 요즘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전염병은 진화와 변이를 거듭하며 인간을 위협해 왔다. 
의학적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던 근대 이전에 전염병은 처음에는 괴질(怪疾)로, 역병(疫病)이나 역질(疫疾)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역병이 유행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5년인 백제 온조왕 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서서는 그 피해가 극심했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1660년에서 1864년 사이의 약 200년 간 역병 발생이《조선왕조실록》에 79차례나 기록돼 있고, 그 중 10만명 이상이 죽은 경우만도 6차례나 등장한다.《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된 1807(순조7)년 당시 조선 인구는 약 756만명이었는데, 18년 후인 1835년(헌종1)에는 약 661만명으로 거의 100만명 정도가 줄게 된다. 18년 동안 100만에 가까운 인구 감소가 주로 역병 때문이었는데,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인구 감소보다도 훨씬 더 규모가 컸다. 조선 후기 주된 역병으로는 콜레라ㆍ천연두(두창)ㆍ장티푸스ㆍ이질ㆍ홍역 등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컸던 것은 콜레라와 천연두였다.
콜레라는 한자로 음역한 호열자(虎列刺)란 이름으로 불리며 맹위를 떨쳤다. 문자 그대로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듯한 고통’과 함께 죽음으로 몰아가는 돌림병이었다. 게다가 천연두는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 호환(虎患)보다도 무서웠고, 아예 ‘마마신’이라 하여 제발 떠나가 달라고 부탁하는 신이 되어 버렸다. 일반적으로 못생긴 여자를 뜻하는 박색(薄色)이라는 용어가 원래 얽었다는 뜻의 박색(縛色)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천연두를 앓은 사람은 살아남아서도 그 흔적 때문에 사회적으로 천시받는 이중의 아픔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갔던 전염병의 공포는 의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도 엄존한다. 어쩌면 인간의 탐욕과 생태계 파괴는 더 진화된 전염병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국가 위기상황에서도 사회 전체의 안전을 도외시한 채 여과 없는 보도와 논평으로 혼란을 가중하는 이른바 일부 보수언론과 극우 유튜버, 그리고 자유한국당이다. 
그들은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도 중국 대륙이 발원지였고, 1918년 2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도 중국에서 퍼졌으며, 1968년 겨울 70만 명 이상이 숨진 ‘홍콩 독감’도 중국에서 첫 발병자가 나타났다. 2003년에는 사스(물론 사스는 중국발이었다), 2010년에는 조류독감,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중국을 휩쓴 뒤 주변 국가로 퍼져나갔다”며 중국인을 바이러스로, 우한과 중국 전체를 세균 서식처로 왜곡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언론이 국제적 명칭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대신 굳이 ‘우한 폐렴’이란 용어로 부르기를 고집하고, ‘중국인 입국 금지’와 ‘국내 체류 중국인 관광객 강제 송환’을 외치는 것은 전염병과 같은 문제마저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덕분에 우리가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지정학적 위치상 정치ㆍ경제적으로 중국과 결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 하는 행동이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중국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행태가 참으로 한심하고 개탄스럽다. 사스와 메르스를 겪었을 때도 공포는 컸지만 적어도 중국에 대한 혐오는 없었다. 혐오 바이러스는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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