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우치는 놀이, ‘깨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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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치는 놀이, ‘깨놀’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02.05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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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아이들 만나 소통하고
‘놀 줄 아는’ 사회로 바꿔간다
▲순창 놀이문화 회복을 위한 학부모, 주민 모임인 ‘깨우치는 놀이’ 회원들이 2019년 장류축제 때 모여 찍은 단체사진.
▲순창 놀이문화 회복을 위한 학부모, 주민 모임인 ‘깨우치는 놀이’ 회원들이 2019년 장류축제 때 모여 찍은 단체사진.

 

자녀들의 영양실조는 걱정해도 ‘놀이실조’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동 관련 전문가들은 4차산업, 인공지능시대를 앞두고 ‘놀이실조’에 주목한다. 사회성 발달과 인성, 공동체성, 회복탄력성 등 반드시 아동 청소년기에 발달시켜야 할 과업이 놀이에 있기 때문이다. 순창에는 ‘놀이실조’에 대해 먼저 눈을 뜨고 실천하는 학부모, 주민 모임이 있다. 깨우치는 놀이, ‘깨놀’이다.
깨놀의 올해 첫 연수는 이른 아침에 순창향교에서 열렸다. 내용은 실내에서 하기 좋은 실뜨기, 아자카드-도둑잡기 놀이이다. 이모들이 실뜨기를 배울 때, 아이들은 실을 잡고 기차놀이(?)를 하며 뛰어다닌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말거나 연수는 진지하다. 이날 연수 강사인 안지혜 총무는 우는 아이를 안고 어르며 진행한다. 최은경 회장과 선배 회원들은 연수보다는 아이들에게 눈이 가 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다칠까 위험한 물건은 치우고, 아이들이 다툴까 봐 분위기를 전환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고, 아기 엄마들도 연수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깨놀은 지역과 학교에 놀이문화를 보급하고 놀이환경을 만드는데 앞장서왔다. 일품공원, 학교 안에 놀잇길을 만들고, 향교, 장류축제, 방과후수업 등에서 어르신. 장애인, 외국인, 아이 등을 가리지 않고 놀이를 회복할 수 있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뛰었다. 도내 ‘깨놀’ 같은 놀이연구회가 없어 부안이나 무주 등 외지의 교육 요청에도 응해야 했다. 이들 활동은 전북교육청,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문화원, 관광두레 등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지역주민과 학부모들이 한 발 한 발 걸어온 발걸음은 민관학 협력의 걸음이다. 이들은 스스로 역량 강화에도 열심이다. 도교육청 ‘학부모 놀이 60+’, 순창향교 ‘전통놀이 전문강사’ 1ㆍ2급 연수를 받아 전통놀이 전문강사 자격을 갖추고, 전통교육 ‘맥’에서 강강술래를 배웠다. 생태와 놀이를 결합한 ‘숲밧줄놀이’ 연수도 받았다. 덕분에 월 1회 정기모임은 자연스레 서로 배움의 장이 된다. 신입 회원들도 가랑비에 옷 젖듯 놀이에 젖어 든다. 깨놀은 대부분 부모로 구성되어 있어 자녀와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 이수진 씨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눈치 보이는데, 이 모임에서는 아이를 환영하고 함께 키우게 됩니다. 아이도 좋아하고요. 아이 때문에라도 계속 나오게 됩니다.”
안지혜 총무와 자녀 정시향(11세) 학생은 놀이의 힘을 증명하는 산증인이다. “시향이가 낯을 유독 많이 가렸어요. 6살 때 처음 모임에 데리고 다녔는데 놀이를 자연스레 익히고 이모들 사랑을 많이 받았죠. 이제는 큰 소리로 인사하고, 누구에게든 먼저 다가가더라고요. 어른이든 친구든 놀이를 가르쳐주고, 못 하는 친구에게 말 걸고… 깨놀 속에서 컸어요.”
아이뿐 아니다. 깨놀은 부모들 자신을 스스로 키우는 모임이기도 하다. 
모임 막내인 이민신 씨는 “아이 낳고 나니까 자연스레 경력단절이 되더라고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깨놀하면서 놀이를 연구하고 배우면서, 향교나 학교에서 놀이로 아이들을 만나고 보람을 느낍니다. 또 작지만, 돈을 벌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걸 느낍니다.”
마을에서 아이들 소리가 듣기 어려운 요즘, 가정과 마을에 아이들이 스스로 또래 문화를 일구고 놀이를 발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 학교인 지금, ‘놀이공간’, ‘놀이공동체’로서 학교가 호출되는 이유이다. 
교육청도 놀이 공간ㆍ놀 시간 마련 등 놀이 정책을 내놓고 있다. 교사 등 구성원의 놀이에 대한 이해에 따라 학생들의 놀이력은 완전히 다르다.  
“교사나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존중하는지에 따라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놀이가 살아있는 학교는 학년, 남녀 구별 없이 잘 어울리고 섞여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는 놀기 힘드니까 따돌림도 없구요. 일주일에 한 번만 가도 놀 때는 다 보이죠.”(지미경 회원)
“잘 놀지 못하는 학교의 아이들 체력이 많이 약해요. 힘이라는 게 자기 몸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건데, 그래서 잘 부딪히고 다툼이 쉽게 일어나요. 장난과 놀이를 구별하지 못하지요. 놀이 속에서 다툼이 자연스레 조절되는데, 그런 경험도 적으니, 작은 다툼이 커지기도 하고요.”(최은경 회원) 
깨놀 활동가들에게 아이들이 점점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다양성을 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보여요. 잘 노는 게 다 따로 있다는 걸 아니까요. 친구들과 못 어울렸는데 유독 비석치기를 잘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비석치기를 하면 그 아이를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이 붙어요. 그러면서 그 아이 표정이 달라지고, 아이들도 그 아이를 대하는 게 달라지고요.”(홍경희 회원)
“놀이수업은 아주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6, 70프로만 준비하고요. 나머지는 아이들이 채워가게 합니다. 병뚜껑으로 딱지치기를 했더니, 다음 시간 아이들은 그걸로 컬링 하더라고요. 놀이수업은 수업이라기보다는 판만 깔아주는 거예요.”(진영미 회원)
“서로 발 잡는 놀이가 있는데, 원래는 남의 발 잡을 일이 없고 싫어하죠. 그런데 놀 때는 서로 잡으려고 난리예요. 놀이가 그래요. 못 하는 일을 하게 해요. 약하면 약한 대로, 강하면 강한 대로 어울려요. 어떻게 하면 재밌게 오래 놀까? 그 생각 뿐이니까요.”(양보순 회원)
“놀 때는 아이들이 완전히 달라져요. 다치거나 아파도 놀아요. 애들은 울면서도 놀아요.”(임미정 회원)
회원들은 웃으면서도 숙연해진다. 놀 시간도 놀 곳도 놀 친구도 찾기 어려운 시대, 놀이판을 깔아주는 ‘깨놀’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노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으면 아파 울면서도 놀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어린 시절 잘 놀고 자란 사람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우리를 키워온 놀이를 정작 아이들에게는 전해주지 못하고 있는 사회, ‘깨놀’이 고맙고 반가운 이유다. 

▲쌍륙놀이.
▲쌍륙놀이.
▲고누놀이.
▲고누놀이.
▲무뽑기 놀이.
▲무뽑기 놀이.

‘깨놀’

2015년 ‘놀이밥60+’ 학부모이해 교육을 계기로 동아리 시작, 전래놀이지도사 취득(2015). 일품공원ㆍ중앙초 등 놀잇길 자원봉사(2016~2019년). 향교 문화재청 문화재활용사업 등 공모 협업(2016~현재) 문화원과 함께하는 전래놀이 진행(2017) 장류축제에서 전래놀이 부스 운영(2016~2019년) 관광두레와 협업, 군내 초등학교 방과후놀이교실, 무주교육청 학부모교육 전래놀이 강의, 부안마실축제 가족놀이터 운영, 전북 자원봉사지원센터 등 전래놀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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