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241) 나를 덜고 비울수록 속상할 일이 적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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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241) 나를 덜고 비울수록 속상할 일이 적어진다
  • 박재근 고문
  • 승인 2020.02.12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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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자형지군이신명지주야 (心者形之君而神明之主也) “마음은 몸의 군주이며 정신을 밝히는 주체이다.” <순자> 
사람의 생명은 몸이 아닌 정신이다. 정신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짐승일 뿐이기 때문이다. 몸은 정신이라는 고귀한 생명을 담기 위한 그릇이다. 사람의 값은 몸(그릇)의 값이 아닌 마음의 값이다. 사람은 마음에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과 마음을 담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존재 의미와 삶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릇(몸)은 튼튼하기만 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그릇(몸)의 치장(부귀)을 위해 마음을 상하게 하고 현명한 사람은 더 나은 보물(정신)을 그릇(몸)에 담기 위해 삶을 공부한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 되면 아름다워지고 지혜로워지며 몸의 노예가 되면 추악하고 어리석어진다. 마음이 성스러움은 최선의 보물이며 마음이 천박해짐은 최악의 흉물이다.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붙이고 사는 것은 불행이다. <플라톤> 
나의 몸도 마음도 무상하다. 무상한 ‘나’가 무상한 것을 갖기 위해 마음을 훼손한다. 깨어있는 마음이란 깨지기 쉬운 ‘나’라는 의식의 미계(迷界)에서 벗어난 마음이다. 세월은 빠르게 가고 곱던 얼굴은 흉하게 변하며 몸은 쉽게 망가진다. 병들며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니 괴롭고 같이 살고 싶은 사람과 떨어져 괴로우며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해야하니 괴롭고 욕구해도 갖지 못하니 괴로우며 가진 것은 잃을까 걱정이 되니 괴롭다. 마음이 내 안의 정신이 아닌 나 밖의 사물에 대한 욕심에 집착하면서 괴로움을 만든다. 마음에서 욕심을 제거하는 만큼 괴로움이 제거된다. 가지려는 욕망과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집착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알고 소유욕을 버리는 것이 마음이 사는 길이다. 
 
내게는 나 밖의 이득 욕구에 유혹되어 사물의 지배를 받는 욕정의 마음과 신의 마음인 진리 도덕 진실로 사물을 지배하는 마음이 있다. 신의 마음인 이성은 사물의 의미와 가치, 선악시비를 지각하고 판단하며 감성은 몸의 눈과 귀를 통해 나 밖의 사물을 분별의 지혜 없이 받아들인다. 감성은 내 것이 아닌 것을 욕구하면서 기뻐하고 성내며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사랑하고 미워한다. 욕구의 불만에서 불평이 나오고 불만과 불평에서 고통이 생긴다. 욕심에 갇힌 마음을 사심이라고 하며 도리에 사는 마음을 한울의 마음(양심)이라고 한다. 나를 버리고 양심을 따라야 고통을 버릴 수 있다. 내가 있으므로 대상이 있고 대상이 있어서 집착이 있고 집착이 있으므로 고통이 따른다. 나를 버리면 대상이 없어지고 대상이 없어지면 집착이 없어지고 집착이 없어지면 고통이 없어진다.

사물을 몸의 눈이 아닌 정신의 눈으로 보면 순리를 알고 순리를 알면 집착하지 않고 집착을 버리면 분노할 일이 적어진다. 몸의 욕구 때문에 영혼의 욕구가 제압당하면 인간의 도리를 잃게 된다. 용기란 신에 속한 내가 몸에 속한 나를 극복하는 것이며 나를 극복한다는 것은 나의 마음이나 밖의 사물에 휘둘리는 것을 극복하는 것을 뜻한다. 괴로움을 덜려면 욕구를 절제해야 하며, 욕구를 절제하려면 필요를 최소화해야 하고, 필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말을 줄이며 생각을 줄이고 사물과의 접촉을 줄이며 활동을 줄이고 조용히 자연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사물과의 접촉이 많을수록 생각과 말이 많아지며 필요가 확장되고 필요가 확장되면 욕망이 커지고 욕망이 커지면 탐욕을 조장하고 탐욕은 내 것이 아닌 남의 몫을 침범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절제되지 않는 욕망은 마음을 자기 밖의 사물에 종속시킴으로써 나를 잃어버리게 한다. 사람들은 세속적 부귀를 인생의 해답으로 알지만, 세속적 부귀에 대한 탐욕이 인류의 삶을 괴로운 것으로 만든다. 세속적 부귀는 사악한 사람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세속적 부귀를 피하고 한울의 부귀인 양귀(良貴)를 택한다. 양귀는 세속적 욕망에 오염되지 않는 천성을 아름답게 가꾼 것을 의미한다. 세속의 부귀를 얻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승리의 기쁨 뒤에는 패자의 고통이 칼을 겨눈다. 세속의 승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불의한 반칙을 하게 되면서 한울이 준 마음인 양심은 더럽혀진다. 승리의 반대편에는 패배자인 약자들의 원한과 가난한 자들의 불행에 의한 눈물과 한숨이 있다. 세속적 존귀는 세속에 오염된 것이기에 가귀(假貴) 즉 거짓된 존귀이며 참으로 귀한 진귀(眞貴)는 한울이 주는 양귀(良貴)이다. 양귀는 내 속에 있는 한울의 정신으로부터 온 것으로 내면의 수양으로 완성에 이른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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