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5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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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5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조경훈 시인
  • 승인 2020.02.12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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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아원(兒園) 조경훈(1939~ ) 풍산 안곡 출생
· 중앙대 예술대 문창과, 미술과 졸업. 2001년 문학21로 등단
· 시집 : 섬진강에 보내는 편지 외 다수 · 현 한국예조문학회장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폭폭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당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마지막 달 12월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 세상 속에 가득”이라고 그랬더니 겨울바람 속에서 전해오는 말이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는 단 하나뿐인 시 한 편을 써서 주라고, 특히 눈 오는 날에….
그랬었다. 백석 시인은 1936년 겨울 눈 오는 어느 날 시 한 편을 써서 어느 여인에게 주었다.
그 여인은 ‘나타샤’라고 했다. 보고 싶은 마음은 펑펑 쏟아지는 눈이 되어 내리고 ‘그래도 끝까지 아니올 리 없다’라고 기다리면서,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 ‘마가리’로 가자고 했다. 시 속에 나는 ‘나타샤’는 러시아 여인의 이름인데 나중에 밝혀진 것은 백석시인이 애칭으로 부르는 자야(子夜)라는 여인이었다.
시의 주인공인 눈 오는 날 ‘나타샤’의 애절한 사연은 고급요정 대연각 주인 김영한이 펴낸 자전 수필집 <내 사랑 백석>에서 백석과 연인 관계였음이 모두 밝혀졌다.
시 속 ‘나타샤’는 바로 김영한이었다. 후일 대연각 주인 김영한은 법정 스님을 통해 전 재산이 불교 조계종에 모두 시주 되었고, 맑고 향기롭게 본도량 ‘길상사’로 명명 되었다.
백석 시인은 8ㆍ15 이후 계속 북에서 살았다. 1988년 해금된 백석 시인은 한국 근대 모더니즘 풍의 세련된 언어를 바탕으로 향토적이고 토속 색이 짙은 서정시를 써서 현대 문학사에 한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분이다.
김영한 씨가 숨을 거두기 열흘 전 이생진 시인이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그 천억은 그 사람(백석) 시 한 줄보다 못해”라고 말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 한 편이 천억보다 더 값진 시가 되었다.

*백석(1912~1996) 평북 청주 출생
방언을 즐겨 쓰면서 모더니즘의 시를 주로 썼다. 저서 <백석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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