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1) 굴러라! 트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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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1) 굴러라! 트랙터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0.02.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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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지나고 보름, 만월이 축복처럼 밝아오면 사람들은 차갑고 묵은 것을 보내며 봄을 맞을 준비로 바쁘다. 
해가 제법 길어졌어도 하우스에 녹비작물로 심은 청보리는 더디 자란다. 그걸 핑계 삼아 3년차 농부의 밭 만들기도 게으르다. 그러다가 방울토마토 정식 날짜가 다가오자 마음보다 몸이 더 바빠졌다.
농사의 시작은 밭갈이, 하우스 농사도 그렇다. 토양 분석 결과에 맞춰 시비는 했지만 밭갈이가 걱정이다. 트랙터도 없을뿐더러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작년까지는 농사를 가르쳐 주시는 멘토께서 해주셨다. 그분은 밭 가는 게 별거 아니니 내년부터는 배워서 스스로 하라고 당부하셨다. 우리 부부는 걱정 반 용기 반으로 트랙터 밭갈이에 도전하기로 했다.
“한 번 해보지 뭐!”
말은 쉬웠고 농업기술센터에 대뜸 전화부터 하고 트랙터를 예약했다. 금요일 아침 “작업성과 스타일을 사로잡는다”는 멋진 트랙터 DK450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농업기술센터 직원에게서 간단한 교육을 받고 제법 높은 의자에 앉은 남편은 위용이 넘쳤다. 
시범 운전 끝에 드디어 출발, 나는 승용차로 호송하듯 뒤따랐다. 그런데 그 멋진 트랙터가 어찌나 천천히 굴러가는지. 기술센터를 빠져나오기도 전에 조바심이 났다. 쌩쌩 차들이 달아나는 큰길에서는 트랙터의 느린 속도가 더 도드라졌다. 모든 차가 추월해도 트랙터의 속도는 그대로.
“열려라, 참깨” 대신 “굴러라 트랙터!”를 여러 번 주문해도 마찬가지. 위험할 것 같아 전화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뒤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시속 10km! 그게 트랙터와 뒤따르는 승용차의 주행속도였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하우스까지는 4km, 거의 한 시간이 걸려 도착했고, 승용차는 최저속도를 갱신했다. 
그렇게 느린 트랙터를 굴려 도착한 남편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몇 시간 뒤에 알게 된 사실은 트랙터는 30km 내외의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 아무튼, 무사히 왔으니 그게 최고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좋은 기계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한 시간 남짓 한없이 느릿느릿 달려오느라 속을 태웠던 트랙터가 밭을 가는 건 시원시원했다. 하우스 한 동을 뚝딱뚝딱 갈아치우더니 다음 동들도 금방 해치웠다. 트랙터를 빌려오고 조작법을 익히는데 오전을 다 보냈으나 정작 하우스 세 동 밭을 만드는 데는 두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밭갈이가 끝난 폭신하고 보드라운 흙은 불그레 피어났다. 거기에는 더디 자란 청보리의 연둣빛과 파쇄해 남은 토마토 줄기의 갈색이며 낙과로 몇 달을 버텼어도 여전히 빨강 그대로인 토마토도 모두 섞여 있었다. 그렇게나 느린 트랙터를 굴린 우리 부부의 조바심도 듬성듬성했을 터. 그리고 올 한 해 토마토와 함께 달콤새콤해질 꿈은 겹겹이 뿌려댔다.
밭갈이가 끝났으니 이제는 골을 탄다는 두둑을 만드는 일이 남았다. 90미터가 넘는 밭두둑은 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는 멋진 가르마를 만들어야 한단다. 또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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