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인물(28) 권진희 시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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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인물(28) 권진희 시인, 사진작가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3.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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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 가는 전통과 시대의 아픔을 찾아, 발 닿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서 시를 쓰고 사진을 찍어대던 사람이 있었다. 해마다 순창 복흥 추령장승 축제장을 누비고, 역사의 아픔이 짙게 묻어나는 회문산 줄기를 힘겹게 오르내리던 사람. 시인이자 사진작가였고, 민속문화학자 역할도 했던 권진희(權鎭喜)다.

▲권진희 시인.

 

시조 <돌절구>로 등단

권진희(權鎭喜ㆍ1931∼2002) 작가는 1931년 순창읍 신남리 대정 마을에서 아버지 권봉우와 어머니 김천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냇가의 몽돌(귀퉁이가 닳아 동글동글해진 돌)이란 뜻의 강석(江石)이다. 
순창초등학교와 순창중학교ㆍ순창농림고등학교(현재 순창제일고)를 거쳐 1956년 조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광주에 있는 비판신문사에서 잠시 기자로 활동하다가 곡성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남원대강중ㆍ남원고ㆍ순창농고ㆍ이리공고 등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순창농고 재직시절 최영ㆍ김경희ㆍ김용택 시인, 선산곡 작가 등이 제자들이다.
1970년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1978년 《시조문학》에 시조 <돌절구>가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한국시조시인협회ㆍ현대시인협회ㆍ한국문인협회 등에 회원으로 참여해 활발한 문단 활동을 했다.
민속문화의 매력을 사진에 담다

그는 시인이기도 했지만, 사진작가로 더 유명하다. 백제예술대학에서 사진학을 강의했고, 1975년 전북미술대전 사진부 초대작가로 활동했다. 대한민국사진전람회 초대작가, 한국사진작가협회 평론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한국사진작가협회 전북지부장을 맡아 당시만 해도 불모지였던 전라북도 사진계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77년 진안 마이산 석탑을 조사ㆍ발표해 마이산 석탑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진안군 용담댐 수몰 지구 기록 사진과 비디오 작품을 제작했다. 동학농민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기록 사진 앨범을 제작해 전라북도 역사를 생생한 사진으로 남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1년에 발간된 이후 지금도 사진집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는 《풍장(風葬)의 세월》은 산업화시대의 현장과 황폐화된 농촌, 흙의 의미와 가치 등을 ‘영상으로 보여준 서사시’다.

‘추령 장승축제’ 기획

권진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삶의 흔적을 찾아 글을 쓰고 사진 찍는 일을 병행하며 방방곡곡을 넘나들던 중 우리 민속문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백제전통문화연구소를 설립(1993)해 사라져 가는 옛 전통을 사진이나 고증을 통해 살려내는 데 노력했고, 1995년 10월에 복흥면 추령리에 ‘추령장승축제’를 기획ㆍ개최해 전국 규모 민속문화행사로 키워나갔다. 
지금은 전국 여러 곳에 장승촌이 있지만, 전국 최초이자 최대 장승촌이 바로 추령장승촌이다. 추령장승촌이 전국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명소로 자리 잡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이곳을 본 떠 장승촌을 만들기 시작했다. 
추령장승축제는 처음에는 전통문화 계승자이며 민속공예가인 추령장승촌 윤흥관 촌장이 복흥면 서마리에 터를 잡고 개인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며 장승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승 수가 늘어나면서 입소문이 나,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권진희는 윤흥관 촌장 등과 함께 토속신앙의 모습을 재현ㆍ발전시키고 민속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해 추령장승축제를 만들게 된다. 추령장승축제는 이러한 배경으로 매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1개월 동안 복흥면 서마리 추령마을 장승촌에서 열리고 있다. 
추령장승촌은 전국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회문산에 대한 애정

회문산은 조선 말기에는 외세의 침략을 맨몸으로 막았던 동학군의 무덤이었고, 국권 피탈 직전까지는 항일투쟁의 성지였다. 그리고 한국전쟁(6ㆍ25) 때는 사상의 차이로 수많은 양민이 붉은 피를 토했던 비극의 중심부였다. 이처럼 회문산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얼룩진 산이었다. 
권진희는 1987년에 발간한 《회문산 바람》이라는 시집에서 한국문학 사상 최초로 회문산에 역사적 조명을 시도했다. 그래서 이기반 전 전주대 교수는 그를 ‘회문산 시인’이라고 평했다. 그는 역사 문화적 흔적이 서려있는 회문산을 역사교육장으로 조성하자는 내용의 강연과 글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회문산 자연휴양림 내 ‘6ㆍ25 양민 희생자 위령탑’ 앞에는 권진희가 짓고, 원광대 서예과 교수 여태명이 쓰고, 원광 대 환경조각과 교수 정진환이 조각한 <외로운 혼백을 위하여> 시비가 있다. 
어쩌다가 이 산하 허리가 동강 났는가/ 겨레 사이 총 목숨 앗아 간/ 동족상잔 오욕의 역사여// 후미진 어느 계곡 이름도 지워진/ 외로운 혼백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흘러간 반 백 년의 피맺힌 세월이여// 봄이면 하얀 철쭉으로 피어나고/ 소쩍새 울음 밤을 지새워도/ 돌아올 수 없는 유명(幽明)의 길이여/ 피울음에 지친 그대들 영혼을 달래고자/ 여기 회문산에 큰 돌탑 세우니/ 고이 잠드소서.

작품과 상훈

첫 시집 《어느 기항지》(1982)를 발간한 이래 《회문산 바람》(1987), 《용담》(2000)을 내놓았다. 사진 관련 저서로는 이론서인 《사진의 기법과 감상》(1985)과 사진집인 《풍장의 세월》(1991)이 있다.
사진 분야에서 전북도전 4회 특선, 국전 8회 입선, 동아국제사진살롱전 입선, 국제관광사진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개인전을 3회 개최했다.
전주시문화장(1990), 대한민국사진전람회 초대작가상(1990), 전북문화상(1991),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순창군민의장 문화장(2000) 등을 수상했다.
2002년 사망했다. 묘소는 순창읍 가남리 선영에 있다. 

▲휴머니티와 리얼리티가 투영된 작품 <풍장의 세월>.
▲<외로운 혼백을 위하여>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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