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24)/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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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24)/ 지금
  • 선산곡
  • 승인 2020.03.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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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선산곡 

 

엽서 한 장 만들었다. 말 그대로 사제엽서다. 이렇게 엽서 한 장 만들어 쓰는 일도 생각해보니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엽서보다 봉투 편지를 더 즐겨 썼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서 쉬지 않고 나는 편지를 썼을까. 그것도 똑같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지 않은 사연으로 쓴 글들. 물론 상념의 줄기는 같았겠지. 시시덕거림은 별로 없었으니 조용한 사색이 아니라 삶의 푸념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우표를 붙인다. 값을 자주 잊어 우표를 붙일 때마다 확인해야만 했다. 오른 값의 우표를 덧 붙여야 하는 일이 많았다. 생각다 못해 아예 지금의 우표 값, 엽서 값을 벽에 써서 붙여 놓았더니 편리해졌다. 우표 뒷면은 인체에 무해한 녹말풀이 발라져 있어 침을 바르면 붙게 돼 있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우표를 침을 발라 붙인다는 것을 비위생적으로 생각하겠지. 그러나 우표는 침을 발라 붙이는 게 정답이다. 
연애편지가 오고가는 시대는 이제 아니다. 세상이 뒤집힐 만한 연애를 할 정도라면 편지를 쓰는 일이 낭만적일 것이다. 그러나 낭만도 이젠 옛날 얘기다. 우표를 거꾸로 붙이면 절교를 뜻한다는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다. 조용한 절교를 택한다면 우표를 거꾸로 붙여라. 물론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메일도 있고 그보다 더 빠른 카톡 하나면 끝나는 세상인데 누가 편지를 쓸까. 연애편지 대필로 슬픈 운명을 노래한 ‘시라노 드 벨주락’이 혀를 찰 일이다.

오른쪽 손목부분이 아리다. 스펀지 패드를 쓰지 않고 컴퓨터 마우스를 사용하다가 생긴 통증이다. 벌써 며칠째, 가라앉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균형을 맞추려는지 왼쪽 팔꿈치 통증 또한 만만치 않다. 귀찮아서 파스 한 장 붙일 생각하지 않고 벌써 몇 주가 흘렀다. 자다가 뒤척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팔 때문에 잠을 깨기 일쑤였다. 성한 손으로 아픈 팔을 들어 올려 마치 남의 팔처럼 옮겨야 하는 짓이 오십대 때 견비통 경험과 똑같다. 순창말로 온몸이 바근바근 아프다는 엄살을 입에 달고 살 수밖에 없다. 만약에, 만약에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라도 한다면 끝장인 나이이니 달싹도 말라는 말을 듣고 산다. 끝장이라는 위험이 이렇게 눈앞에 버티고 있을 줄이야. 예전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다. 백세시대. 말이 좋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만 들어도 떠오르는 게 있다.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이민 온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 그 아들의 성장이야기인 <정복자 펠레>라는 영화다. 아주 오래 전 티브이 명화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오늘 우연히 그 영화에 출연했던 ‘막스폰 시도우’가 별세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1주일 전 3월 8일, 대배우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향년 90세. 
월요일 아침, 1주일 재택근무가 끝나고 회사에 출근해야하는 아들에게 전화로 했던 말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감추어둔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옛날, 군에 입대했던 아들 생각에 <정복자 펠레> 영화의 주제음악을 들으며 남몰래 울었던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 그 음악을 찾아 들으며 나는 또 찔끔거렸을까. 그날이 3월 9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이든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라는 의미가 불러온 이 우연(偶然)함이 싫지가 않다. 나와 아버지, 그리고 나와 아들. 애련의 관계다. 
늦었지만 ‘막스폰 시도우’ 그에게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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