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우 신앙ㆍ순창읍민 사연 가득한 ‘순창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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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우 신앙ㆍ순창읍민 사연 가득한 ‘순창성당’
  • 김상진 기자
  • 승인 2020.03.18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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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으로 짓는 성당” 건축비 부족해도 믿음 ‘가득’
31억 필요 25억 마련, 6억 모자라 교인 한마음으로 ‘기도’
▲새롭게 짓고 있는 순창성당. 현재 공정률은 70% 이며, 7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롭게 짓고 있는 순창성당. 현재 공정률은 70% 이며, 7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며 슬레이트로 올린 지붕에서 물이 새고 흙이 떨어진다. 바닥은 삐걱거리고 낡은 벽은 여기저기 금이 가 위험하다. 건축한 지 60년 넘은 순창성당 이야기이다.
천주교 순창성당 황인선(아우구스티노) 사무장은 “가난한 시골 성당에서 어떻게 돈을 만들어 성당을 지을 것이냐? 걱정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성당 신축은 하느님의 뜻이다. 성당 소유 부지를 농수산품질관리원에서 구매하겠다고 나섰고, 공사가 시작되면 가장 큰 문제가 될 임시 성당 문제도 해결되었다.” 
성당 신축을 결정하고 2018년 4월 15일 기도문을 배포하고 본격적인 모금을 시작했다.
성당 교우들은 음식바자회를 열고 교인들이 운영하는 업체 상품을 판매해 수익금을 받는 등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초 21대 신부로 부임한 이사정(라파엘) 신부는 건축기금 모금에 앞장섰다. “새 차 사려고 5년간 모은 돈과 통장을 다 털고, 자취하며 매달 200만원씩 1억5000만원을 봉헌했다.” 신부와 수녀, 교우들의 노력으로 모금한 금액과 오래전부터 모아온 본당 발전기금과 토지매각 대금 등을 포함해 25억원 가량을 모았다. 필요한 건축비 약 30억9000만원에 6억원 가량이 부족하다.
서춘식 건축위원장은 “부족한 6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순창 고추장, 된장을 들고 전국 성당을 찾아다니며 판매한 수익금을 모으고 모금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순창 읍내를 관통하는 큰 길(중앙로)과 예전에는 광주에서 남원 가는 도로였던 교육청사거리에 인접한 작은 동산 위에 다소곳이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는 듯 자리 잡았던 성당을 새로 짓는 일은 천주교인들만의 계획은 아니었다. 읍내 사람의 추억과 사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성당 신축공사는 지난해 5월 3일 철거작업을 시작해 6월 본당 철거를 마치고 7월 10일 ‘성전신축 기공식’을 가졌다. 지금까지 공정률은 약 70%, 오는 7월 완공하여 9월에는 신축 성당에서 미사 봉헌을 목표로 공사하고 교인들은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단다.
한 신도는 “교인들의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성전을 신축해, 순창읍민의 새로운 사연을 차곡차곡 쌓아 아름답고 은혜로운 성전을 마무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백발 신도의 믿음 가득한 기원에 우뚝 선 새 성당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순창읍 ‘랜드마크’였고 새 지역의 대표 건물이 될 순창성당 건축기금 봉헌 문의는 063-652-1004이다. 

▲이사정(라파엘) 신부.
▲이사정(라파엘) 신부.

● 순창 천주교 유래
 

조선말 박해 피한 ‘신앙공동체’
1889년 쌍치오룡촌 공소 중심
1959년 5월 9일, 현 위치 성전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회문산 자락에 대단위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882년 리우빌 신부가 작성한 교세 통계표에 따르면, 그해 “어은동ㆍ내동ㆍ대판이ㆍ아청이ㆍ밤송이ㆍ운행이ㆍ먹산이ㆍ움터골ㆍ갈재ㆍ시루봉골” 공소를 건립 사목(천주교 사제가 구원의 길로 이끎) 했다. 
쌍치와 복흥 지역에 설립된 공소 중 1889년에 베르모렐 신부가 설립한 오룡촌 공소가 중심지가 되었다. 1929년 정읍 능교리 본당 주임 김창현 신부가 집전한 가운데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가 오룡촌 공소에서 열렸다. 당시 고해성사는 600명, 성체성사는 300명이었다. 미사 전날 청년들이 ‘선종선종 악행악종’이라는 성극을 공연했는데 1000여명이 관람할 정도로 교우가 많았다.
1959년 5월 9일 당시 순창에 직장이었던 김영규 회장과 정민호 부회장 등이 남원본당 박성운 신부에게 성당부지로 매입하고자 하는 동산 앞에 있는 논(순창읍 남계리 205번지, 현 게이트볼장)이 매물로 나왔다고 전하고 이들의 협조로 매입했다. 그해 7월 8일 동산을 매수하며 순창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지난 17일, 순창성당 이사정(라파엘) 신부는 “오룡공소가 박해를 피해서 모인 교우촌 중 중심이 되었다. 한국 최초 신부였던 김대건 신부의 동생 김난식(프란치스코)과 조카 김현채(토마스)의 묘가 회문산 자락에 있는 것으로 보아 1846년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후 삼족이 멸하는 화를 피해 일가와 친척들이 1850년 전후 회문산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룡공소를 모태로 광주대교구가 생겼고 쌍치공소도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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