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2) 아주아주 재미지게, 아주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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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2) 아주아주 재미지게, 아주심기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0.03.2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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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가 커간다. 이 녀석들은 모종을 사서 아주심기를 한 것이다.
아주심기는 수확까지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뜻이다. 처음 육묘장 상자에서 꺼낸 모종은 30센티 안팎의 키에 예닐곱 개의 잎을 키우고 있었다. 작은 꽃망울은 솜털이 보송했고, 그 중 한 둘은 노란색 꽃이 놀란 듯 화들짝 피어 있었다. 
아주심기 하는 날은 맑고 따듯했다. 두둑은 진즉 만들어 비닐 멀칭을 했는데 적정 토양 온도를 유지해서 뿌리내림을 좋게 하려는 것이다. 올해는 트랙터로 스스로 밭도 갈았고, 도전 끝에 가리마처럼 반듯한 두둑도 만들었다.
모종 몇 천주를 심으려니 온 가족이 나섰다.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 오십대 우리 부부, 십대 후반의 아이들까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주심기 첫 단계는 모종 뿌리를 ‘물에 담그기’이다. 물이 들어 있는 넓은 그릇에 40주가 한판인 모판을 어느 정도 담가두었다가 꺼내 물을 뺀다. 다음은 그 모판을 적당한 위치에 배달하는 일. 이 일을 걸음 빠른 둘째가 스스로 나섰다. 다행이다. ‘모종 배달’이 원활해야 심기가 쉬운 법.
평생을 재바르게 움직이신 어머니는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 두둑 넘게 심었고, 큰 아이도 굼뜨고 서툴지만 심기에 열중하고 있다. 연로한 아버님도 모판에서 모종을 빼서 어머니 앞에 내놓으며 애를 쓰신다. 
남편은 모종 상자에서 모판을 빼내고 ‘물에 담그기’ 담당인 나까지 3대 가족의 손발이 맞고 일이 척척 진행된다. 흐뭇해져서 언제 다 심나 싶었던 토마토 모종까지 어여쁘다. 점심때가 되어 맛난 밥도 먹었고 오후에 바짝 서둘면 금방 끝날 것처럼 순조로웠으나 거기까지였다.
점심을 먹고 나자 배달 담당이 ‘재미없어’와 ‘힘들어’를 연발했고, 굼뜬 심기 담당 언니도 허리 다리 아픈데, 짜증까지 났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너무 빨리(?) 잘 심어서 한참이나 뒤쳐졌다. 토마토 빨리 심기 대회도 아닌데 알 수 없는 심통을 낸다. 입시를 치루며 체질화된 경쟁심인가 싶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노동 때문이겠지 하면서도 나는 ‘빨리빨리’를 소리친다. 
얼마 안 있어 ‘모종 배달’과 ‘심기’ 임무를 아이들이 서로 바꾼다. 잠깐 임무 교대의 약효가 나타났지만 이내 재미없고 힘들단다. 반복된 일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엄마 아빠는 농사가 재미있냐고 물어본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그럼, 재밌지. 한다.
“매일매일 자라고 새로운 일이 생겨서 하나도 안 지루해”라고. 
“헐? 말도 안 돼. 진짜?”
믿기지 않아 하는 듯 두 아이의 목소리가 높다. 
정말 그랬다. 귀농 뒤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왜 힘든 농사를 지으려고 하느냐고, 뭐 하러 농사를 택했냐며 안타까워했다. 재미있는데요! 씩씩하게 대꾸하면 마지못해 그래야지, 한다.
‘재미’란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어떤 일이나 생활의 형편을 이르기도 하고 좋은 성과나 보람을 이르는 말이다. 농사는 “생명과 교감하는 진짜 재미를 만나는 일”이라고 한다. 초보 농부 딱지도 떼지 못한 우리도 아주아주 재미지게 농사를 짓고 싶다.
우리 가족은 서로 격려하며 ‘아주심기’의 긴 노동을 마쳤다. 촘촘한 모판에서 옮겨져 흙의 온기며 습도를 향해 뿌리는 더 깊이 멀리 전진할 것이다.
아주심기를 한 다음,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일은 뿌리 내리기다. 땅속뿌리를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하루가 다르게 튼실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뿌리내리기를 잘하고 있구나 한다. 특히 더 어리고, 연약했던 모종이 쑥쑥 커가는 모습은 참 대견하고 기특하다. 몇 년 전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와 글 짓는 농부로 또 다른 뿌리 내리기 시작한 나의 형편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믿는다. 세상의 모든 씨앗이 그런 것처럼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으리라고. 그 모든 것을 길러내고 겪어내는 게 진짜 재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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