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25)/ 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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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25)/ 격세
  • 선산곡
  • 승인 2020.04.0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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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  -선산곡

 

 옛날 사진을 찾을 일이 있어 살림을 뒤지다가 뒷 베란다 책장 위에 돌돌말린 종이막대를 발견했다. 겉을 싼 누런 신문지를 뜯어보니 모 음반회사에서 제작한 뮤지션 초상 달력이었다, 초상은 흑백인데 바탕은 온통 검은색이어서 칼라 작품과는 대조되는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해마다 배포된 그 회사의 달력은 인물만 달랐지 나머지는 똑같았다. 클래식한 디자인이 다른 달력들과는 차별화되어 남들은 몰라도 나에겐 나름대로 명품이라는 인식이 앞서 있었다. 
해마다 그 회사의 달력을 구하기 위해 안달이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만큼 희귀한 제품이었다. 단골로 다녔던 음반 가게에서 가까스로 구해 기뻐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가게의 여주인은 ‘선생님 드리려고 특별히 구했다’는 말과 함께 진열장 아래 깊숙한 곳에서 비닐로 포장된 것을 꺼내 주었다. 그 즉시 벽에 걸지 않고 말아 둔 것은 언젠가 패널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종의 소장 가치였던 것이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우리나라의 지휘자 정명훈,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젊은 얼굴이 있다. 작고한 사람으로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두 사람뿐이다. 1996년 달력이니 벌써 몇 년 전인가. 엘피 음반에서 시디로 탈바꿈하던 시절이었다. 남자 나이면 군대도 다녀온 햇수를 거른 것이다. 이삿짐 속에서도 버림받지 않고 견뎌온 12장짜리 달력에 묘한 감회가 들기 시작한다. 이런 걸 격세(隔世)라고 해야 하나. 
불혹(不惑) 지나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던 나이에 넣어 둔 달력이었다. 따지고 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의 정열만큼, 써먹지도 못할 지난 달력이 아닌가. 사진 속 인물들도 나이 들고 폭삭 늙었겠지만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패널 만들어서 벽에 걸어둘 생각은 이제 물 건너갔고 옛날처럼 책가위 쌀 일도 없는 쓸모없는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 낱장으로 뜯어 펼쳐 놓고 보니 버리기는 아깝고 간직하자니 어쩐지 내키지 않는다. 인생도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 격세 탓이다.
패널을 말하자니 떠오르는 게 있다. 오래전 딱 두 점의 패널을 방에 걸었다. 라울 뒤피의 작품이 한국에 왔을 때 덕수궁 전시장에서 산 포스터를 화방에 의뢰해 만든 것이었다. 뒤피가 샤를 민쉬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장 구석에 숨어 스케치했다는 일화가 있는 <음악회>와 <니스의 불꽃놀이>라는 작품이었다. 두서너 번의 이사 끝에 끝내 부서져 내버린 패널이었지만 뒤피에 대한 감각은 쉽게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몇 해 전 프랑스 남부를 여행했을 때 그의 그림으로만 보아 온 니스의 정취에 한풀이 하듯 나는 취해버렸다. 벽에 걸린 작은 패널로 눈에 익은 색채들이 직접 본 지중해의 풍광과는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아 사뭇 감개무량이었던 것이다.
내 그림조차 벽에 걸리는 것이 탐탁지 않게 생각했으니 벽 장식은 애초에 남의 얘기였다. 지금이야 가족사진 하나 식탁 옆에 걸려있고 아들 세 살 때 찍은 사진액자가 내 서재에 걸린 것밖엔 없다. 물론 방마다 걸린 달력은 있다. 켜켜이 쌓아가지만 완벽히 허물어가는 세월 앞에 달력이 무슨 대수일까만 비로소 느낀 것이 있으니 때가 지난 달력은 뜯고 지워내 버리는 게 옳은 일 같다. 내 걸지 않았던 묵은 달력 하나에 읽는 세월의 흔적. 확실한 격세다. 그 격세지감이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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