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가게]‘웨딩미용실’, 아니 정 넘치는 ‘웨딩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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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가게]‘웨딩미용실’, 아니 정 넘치는 ‘웨딩밥집’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04.08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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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하는 사람보다 밥 먹으러 오는 나그네 더 많아”
주인 김복태 씨, 매일 점심상 차려 주민, 손님 맞아
▲터미널 승강장 안쪽 웨딩미용실은 늘 사람이 북적인다. 머리하는 사람보다 쉼과 밥상을 나누는 사람이 더 많은 정이 가득한 공동체다. 맨 오른쪽이 사장 김복태 씨.

순창읍 시외버스터미널 안에 웨딩미용실이 있다. 미용실은 ‘밤낮’ 늘 북적인다.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사람이 항상 많을까? 웨딩미용실 주인 김복태(63)씨는 ‘사람 좋은 얼굴’로 기자를 맞는다. <열린순창> 기자라고 했더니 손님들이 더 목소리를 높인다. “잘 왔어. 여기 미용실 신문에 좀 내줘.” 손님들이 입을 모아 미용실 자랑한다. “머리를 이쁘게 해. 마음에 쏙 들게.” “요기가 우리 아지트여. 우리는 여기 사흘이 멀다고 와. 수다 떨고 밥도 먹고, 차 시간이 머니께 쉬었다 가고, 졸리면 잠도 자고.” “여그 다 머리하는 사람이 아니여. 머리하는 사람 세 명이면 밥 먹는 사람이 스무 명도 넘어. 나그네가 겁나.” 김연임(81ㆍ구림) 씨는 “여기서 밥 먹으려고 다른 데서 먹자는데 약속 있다 하고 왔어.”
웨딩미용실에서는 매일 점심상을 차린다. 오는 사람이 대중없다. 터미널을 이용하는 누구나 온다. 미용실 주인은 식당 주인처럼 흐뭇한 얼굴이다. 
“할머니들이 밥을 잘 잡솨. 점심 때는 여기가 꽉 차. 서서 먹는 사람도 많아. 큰 솥으로 하나를 해야 혀. 여기서 하면 별나게 맛있대.”
팔덕에서 온 조영순(78) 씨는 “나는 여기서 밥 먹으면 아무리 아파도 살아나. 어제는 온종일 아파서 누웠어. 다리 수술한 데가 애려서 어떻게 아픈지, 고창에 놉 가자는데 못 간다고 했어. 여기서 밥 먹고, 누룽지 먹고 나니 멀쩡해. 다 낳았어. 되살아났어.”
여기저기서 ‘축하한다’ 덕담이다. 그뿐 아니다. 아픈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밥 먹고 살아났다고 말한다. 어떻게 미용실에서 밥해서 함께 먹을 생각을 했을까?
“처음에 할머니들이 우두커니 앉아 있응께, 나만 먹자니 짠하고, 죄 받는 것 같고, 그래서 밥해서 함께 먹기 시작했어. 힘들 거 없어. 할머니들이 다 해와. 봐.”
감말랭이 무침, 김치, 물김치, 파김치 … 냉장고 안이 반찬으로 가득하다. 
“다 할머니들이 만들어 온 거야. 없는 것이 없어. 오늘은 호박죽 끓여 왔어. 누가 호박 주면, 다른 할머니가 끓여 오고. 일찍 먹은 사람이 설거지하고. 힘든 게 하나도 없어. ”
웨딩미용실의 커다란 식탁은 작은 손길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여긴 머리도 잘 하지만, 사장님 마음이 더 이뻐.” “암, 차별을 안 해. 그르니, 장애 있는 사람이 많이 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땅콩을 깐다. 서로 버스 시간을 챙겨주고, 김치 가져갈 차량도 챙긴다. 차별하지 않는 건 미용실 주인뿐 아니라 미용실 나그네 모두다. 
“여긴 장애인이고 뭐고 없어. 와서 같이 놀아. 모두 고맙지. 가끔 자식들 데려오면 머리도 하고, 할머니들이 용돈도 줘. 배추 사 오면 김치 담가 주시고. 고마운 할머니들이 많아.”
미용실 주인 김복태 씨는 나그네들에게 감사한다. “장애인들, 약속 더 잘 지켜. 20일날 장애연금 나오면 외상값을 딱딱 갖다줘. 가끔 차비 없다며 빌려 달래서 빌려주면, 생각지도 않는데 갖다줘. 나는 적는 것도 없거든. 여태 떼먹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
남성 한 분이 들어와 안주를 찾는다. “안주 좀 줘봐. 마른안주 있나?” 그도 밥 먹으러 자주 오는 ‘나그네’다. “누가 지금 술 먹어. 낮부터?” 할머니들이 타박하다가 코로나 영향으로 일이 없어 술을 먹는다는 그에 대한 걱정이 이어진다. 
“이이가 날 못 가게 해”…“밥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워낙 고마운 할머니라.”

“젊었을 적에는 몰랐는데, 나보다 없는 사람,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 장애있는 사람들, 모두 너무 고마워. 내가 무슨 일 있으면 들어주고, 감싸주고, 좋은 말해주면 마음이 다 풀려. 참으라고 다독거려줘. 내가 어쩌다 이 일을 배워 이 복을 누리나 싶어. 한 번 오신 분이 몇 년 째 오시고.” 
“나는 죽도록 여기만 다녀. 여기가 내 머리치를 알아.” ‘여기만 오는 이유’를 다투어 말한다. 마지막 손님 머리 손질을 마치자, ‘나그네’ 한 분이 빗자루를 들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모은다. 처음부터 인터뷰를 지켜본 강복여(구림, 72) 할머니가 일어선다. “에그, 가야 하는데, 이이가 날 못 가게 해.” 내일 손 수술하는 날이라 김복태 씨가 잡아둔 것. “수술하면 당분간 못 보니까.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워낙 고마운 할머니라.” 나란히 미용실을 나선다. 
웨딩 미용실을 나서며, 터미널이 달라 보인다. 모두가 ‘손님’인 터미널이 나그네를 불러 모으는 ‘주인의 공간’으로, 가진 것을 내놓고 나누는 ‘공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해있었다. 코로나로 참았던 숨을 쉬게 하는, 서로를 살리는 ‘살림의 공간’으로 마법처럼 변신해있었다. 마법의 주인공, 복태 씨와 나그네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웨딩미용실을 찾은 주민들이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웨딩미용실을 찾은 주민들이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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