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26)/ 깡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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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26)/ 깡치
  • 선산곡
  • 승인 2020.04.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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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말로 더러버서.”
어느 원로문인이 자주 쓰는 말이다. 시세(時勢)나 판세의 분위기가 어긋나면 농담처럼 던지는 말로 늘 좌중을 웃기곤 했다. 나 원 참 더러워서. 자조 비슷하지만 탓하기 싫다는 반골의 줏대가 드러나 보여서 듣기 싫지 않았다. 들을 때마다 ‘워’의 발음이 ‘버’로 변하는 경상도 억양에 ‘순창말로’라는 표현이 아무래도 낯설다는 생각이었다.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순창말로 ‘더러버서’라는 표현은 없는데요? ‘드러워서’는 아니고 차라리 ‘던지러서’가 익숙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순창말 아닌 줄은 알아. 그러나 조 국장과 만나면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어.”
빙그레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 중에 오래전 고향의 모 신문지국, 선배의 이름이 나와서 놀랐다. 원로 문인이 그 신문사의 편집국장 시절, 기자였던 고향 선배와 자주 만난 사이였다고 한다. 만날 때마다 의기가 맞아 가끔 내뱉은 말이 그렇게 굳어졌다고 했다. 
“순창에서는 더러버서 보다 더 적절하게 쓰는 말이 내꼴시럽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꼴시러?”
“직접이건 간접이건 상대하는 쪽에 비위가 상한다는 정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내꼴시럽다’는 말은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겨레말 용례사전을 찾아봐도 없었다. ‘더러버서’건 ‘내꼴시러’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말 앞에 두는 ‘순창’이라는 뜻이 어딘가 모르게 깡치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지방말을 ‘사투리’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굳이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은 것일 뿐, 표준말과 다른 지방 말이 사투리로 불린다 해서 격이 낮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내 고장에서 쓰는 언어에 줏대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시인으로부터 사투리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사람의 원고를 수정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사자가 쓴 원고를 보니 감이 오지 않는다며 ‘감칠 맛 나는 사투리를 잘 쓰는(?)’ 내게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맥락이 어지럽고 두서가 없었다. 내용을 가감하고 정리를 한 뒤 보내줬더니 명작이 되었다고 펄펄 뛰듯 좋아했다. 물론 깡치있는 순창말을 충분히 넣은 뒤였다.
오래 전 제2회 사투리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획득한 사람이 순창댁이었다. 원래 익숙했던 언어라 듣기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는데 댓글을 보니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어 고향이 전라도인 어머니의 통역(?)이 필요했다’고 쓰여 있었다. 욕설이 제법 많이 섞여 있었지만 듣기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고향 사람들 모두 그렇듯 평생 나도 순창말을 썼다. 직장은 물론 군대에서조차 말투를 감추지 않았다. 유난히 많았던 경상도 출신의 선임들에게 갖는 저항의 표시였는지도 모른다. 전라도 사투리라는 비난이 심했지만 지켜야 했던 자존심이 그 ‘깡치’였다면 지나친 표현만은 아니다. 새삼 생각하니 더럽고 아니꼽고 내꼴시럽다는 말 앞에 ‘순창말로’가 들어가니 제맛이 난다는 것이다. 그 깡을 알고 계신 원로 문인은 여전히 ‘순창말로’를 앞에 두고 반골의 줏대를 세우고 있다. 그게 솔직히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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