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인물(32) 조선시대 군수②-고경명ㆍ김천일ㆍ임계영
상태바
순창인물(32) 조선시대 군수②-고경명ㆍ김천일ㆍ임계영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4.23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진왜란 때 구국 선봉에 선 순창군수 출신 의병장들  

임진왜란 때 전국이 일본군 침략을 받은 상태에서 전라도는 일부 북부 산간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보전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전라도는 7년 전쟁의 병참기지 구실을 했고 도내에서 일어난 의병도 향토 방위전이 아닌, 국토 방위전 활동을 펼쳐야 했다. 도성 수복을 위해 경기도로 북상해 침략군과 싸우거나, 적들이 점령하고 있는 경상도에 진군해 실지 회복을 위한 의병 전투를 전개했다. 이번에 소개할 인물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구국의 선봉에 섰고, 순창군수를 역임했던 고경명ㆍ김천일ㆍ임계영이다.

▲고경명 초상화.

고경명(高敬命) 
… 순창 화산서원 배향된 문관이자 의병장

고경명(高敬命ㆍ1533~1592)은 정3품 대사간을 역임한 고맹영의 아들로, 광주시 압보천에서 태어났다. 20세에 진사시에 장원, 26세에 문과 갑과 장원을 했다. 공조 좌랑ㆍ사간원 정언 등을 거쳐 1586(선조 19)년부터 1588(선조 21)년까지 순창군수로 재직했다. 1591년 동래부사로 있다가 서인이 축출될 때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경명은 당대 문인이었다. 벼슬길에서 물러나 있던 19년 동안 수많은 문인과 교류하며 임억령ㆍ김성원ㆍ정철과 더불어 ‘식영정(息影亭) 4선(仙)’이란 칭송을 들었을 정도로 명망있는 시인이자 문장가였다. 특히 스승인 송순의 정자 ‘면앙정’의 절경을 노래한 <면앙정 삼십영>을 하서 김인후, 석천 임억령 등과 함께 지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광주와 장흥 등에서 모집한 의병 6000여 명을 이끌고 임금을 지키러 의주로 가던 중 금산에 집결하고 있던 왜군과 싸우다가 아들 고인후와 함께 전사했다.
이 전투는 전쟁 초기 관군이 연패를 거듭하던 상황에서 의병이 주축이 돼 일본군 주력을 상대로 싸운 최초의 전투였다. 비록 패했지만, 일본군의 전주 공격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그 전략적 의미가 매우 크다. 
《선조수정실록》은 “호남의 고경명ㆍ김천일, 영남의 곽재우ㆍ정인홍, 호서의 조헌이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라고 적고 있다. 이어 “고경명은 문학에 종사해 무예를 익히지 않았으며 나이 또한 노쇠했다. 충의심만으로 많은 군사를 격려해 위험한 곳으로 깊이 들어가 솔선해 적과 맞서다가 전사한 것이다. 비록 공은 성취하지 못했어도 의로운 소문이 사람을 감동하게 해 계속 의병을 일으킨 자가 많았으며, 나라 사람들이 그의 충렬(忠烈)을 칭송하면서 오래도록 잊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 광주에 포충사(褒忠祠)를 짓고 봄, 가을에 제사를 모시게 했다. 포충사에는 고경명ㆍ종후ㆍ인후 등 3명의 불천위가 함께 모셔져 있다. 3부자가 한 전쟁에서 전사한 예는 세계 전쟁사에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경명의 장녀도 남편이 왜적과 맞서다 전사하자 자결한 충절의 집안이다. 아버지와 형을 따라 전쟁터로 나가려던 15살 막내만이 고경명의 명에 따라 어머니를 모시다가 아버지의 시문과 격문을 간직해 유고문집을 편찬했다. 고경명은 순창 화산서원에도 배향되었다. 

▲김천일 초상화.
 

김천일(金千鎰) … 조선 전기 문관이자 의병장

김천일(金千鎰ㆍ1537~1593)은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金彦琛)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호남에서 명망이 높았던 이항(李恒)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573년(선조 6)에 군기시 주부에 처음 발탁된 뒤 용안현감 등을 역임했다. 1578년(선조 11)에 임실현감을 지낸 뒤 한성부 서윤, 순창군수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8월에 전라병사 최원(崔遠)의 관군과 합류해 강화도로 진을 옮겨 바닷가의 적군을 공격하고, 양천ㆍ김포 등지의 왜군을 패주 시켰다. 양화도전투, 사현전투, 권율(權慄)의 행주산성전투 등에 참전했다.
왜군이 남으로 후퇴하자 1593년(선조 26) 6월에 왜군을 추격해 절도사 최경회(崔慶會ㆍ논개와 가족을 거둔 이로 유명함) 등과 함께 진주성으로 입성했다. 6월 21일 왜군이 2차로 진주성을 공격하자 ‘도절제(都節制)’가 돼 관군과 의병을 진두지휘, 임진왜란 최대의 혈전을 벌였다. 성이 함락돼 더는 싸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들 김상건, 최경회 등과 함께 남강에 투신해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조정에서는 김천일을 1603(선조 36)년 좌찬성에 추증하고, 1618(광해군 10)년에는 영의정에 가증(위계를 더 높임)하는 등 그의 공과 충절을 기렸으며 순창 화산서원 등에 배향됐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김천일은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대표적인 호남 출신 의병장이다. 고경명이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해 조선 선비의 기개를 떨쳤다는 측면에서 상징적 의미가 컸다면, 김천일의 의병 활동은 고향을 떠나 경기도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는 등 실질적 전과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다. 

▲임계영의《삼도실기》

임계영(任啓英) 
… 전라좌도 의병장, 경상도 지역 왜적 섬멸

임계영(任啓英ㆍ1528~1597)은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좌통례(左通禮)를 지낸 국담(菊潭) 임희중(任希重)이다. 1576년(선조 9)에 별시 문과 병과에 급제해 진보현감을 지냈고, 임기가 끝난 뒤 고향에 은거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7월, 65세 고령에 보성에서 전 현감 박광전(朴光前)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고경명과 조헌 등이 금산전투에서 순국하니, 분연히 이르기를 “호남을 지키지 못하면 곧 나라의 땅을 잃게 되고, 땅을 잃으면 백성도 없게 된다”하고, 7월 20일 보성 관아에서 임계영을 의병장으로 한 전라좌의병이 결성되었다. 
전라우의병장 최경회와 함께 장수ㆍ거창ㆍ합천ㆍ성주ㆍ개령 등지에서 왜군을 격파했다. 특히 임진년 12월 14일에 벌어진 성주대첩에서는 성내에 진을 치고 있던 일본군을 들판으로 유인한 후, 현지의 관군과 향보의병이 모두 전투를 꺼린 상황에서 전라좌의병 독자적으로 적병을 거의 섬멸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세운 전라좌 의병의 뚜렷한 전공은 현지의 의병지도부와 비변사의 평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임란 초기 임계영이 이끈 전라좌의병의 활동은 여러 면에서 주목된다. 겨울 추위가 한창이던 때, 천 리 밖이나 떨어진 경상우도 산간 동토에서 군량 조달과 병력 충원 등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며 적들을 물리쳐갔다. 전라좌의병 지휘부가 구사한 전법도 독특했다. 군사행정과 전투 지휘를 문관 출신 의병장과 무재(武才)가 뛰어난 부장(副將)이 분담해 의병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즉 실전에서는 항상 부장(副將) 장윤(張潤)이 정예병 수백 명을 이끌고 신속하게 적진을 공격하는 형태를 취했고, 의병장 임계영은 전투 현장에서 가까운 본진에 위치해 군수 보급과 행정 업무를 총괄했다.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전투 때는 장윤에게 정예군 300명을 이끌고 먼저 성에 들어가게 하고, 밖에서 곡식과 무기를 조달했으나 왜적이 성을 포위해 성에 들어가지 못했다. 성이 함락되고 장윤이 전사하자 그와 함께 죽지 못한 것을 죽을 때까지 한스럽게 여겼다 한다. 
화의(和議)가 진행되고 전쟁이 소강상태일 때 양주목사 등을 지내고 1595년(선조 28)부터 1596년까지 순창군수를 역임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다시 의병을 일으켰지만, 이미 70 노령이었고 10월 27일 사망했다. 양주에는 덕정비(德政碑)가 있고 순창에는 빙옥비(氷玉碑)가 있었다. 사후 병조참판 겸 의금부동지사가 추증되었다. 저서로 《삼도실기》(三島實紀)가 전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조합장 해임 징계 의결” 촉구, 순정축협 대의원 성명
  • 순창군청 여자 소프트테니스팀 ‘리코’, 회장기 단식 우승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