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순창] 연대산성, 전봉준 장군, 기삼연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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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순창] 연대산성, 전봉준 장군, 기삼연 의병장
  • 김상진 기자
  • 승인 2020.04.28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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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산성(전라남도기념물 제353호)은 팔덕면 서흥리와 담양군 용면 산성리에 있는 산성이다. 연대산성은 순창에서 불리는 명칭이고 담양에서는 금성면에 위치해 있어 금성산성이라 부른다. 연대산성은 강천산 연대봉에 있다. 연대봉은 순창군 서쪽 끝자락 호남정맥에 솟아 있는 산으로 강천산 자락에서 가장 높다. 연대산성으로 불리는 다른 이유는 현재는 터만 남아있지만 연대암이라는 사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대산성은 주민들을 지켰으며 의병들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축조시기와 특성

연대산성은 600미터 철마봉 절벽에서 시작해 연대봉, 시리봉 산줄기를 이용해 축조했다. 강천산 산줄기는 서남쪽으로 뻗어 담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봉우리마다 음봉(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이루어져 경관이 아름답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좋고 추월산, 고창의 문수산, 광주의 무등산까지 보인다. 
연대산성 축조 시기는 삼국시대, 신라말, 고려초 등 추측만 있을 뿐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에 입보(성안에서 보호를 받음)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는 3킬로미터로 큰 규모다. 외성과 내성 이중성으로 외성의 둘레는 2킬로미터, 내성의 둘레는 700미터이다. 
성돌은 산성 주변의 자연 암반에서 떼어낸 수성암 계통의 석재를 판자 모양으로 거칠게 다듬어 사용했다. 경사가 가파른 비탈면과 능선 정상부는 외벽만 성돌로 쌓는 편축식으로 쌓았다. 성문 부근은 내ㆍ외벽을 모두 성돌로 쌓는 협축식으로 쌓아 지형 조건에 맞춘 축성법을 적용하고 있다.
암벽과 성돌이 자연스럽게 접합되도록 처리하고 윗부분에는 성돌을 쌓지 않았다. 성벽이 지나가는 구간의 높낮이 차이가 큰 점을 고려하여 경사면에 맞추어 잔돌로 고정해 가며 수평쌓기를 했다. 성벽 상단을 계단식으로 마무리해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문터는 본성에서 동서남북 4곳과 내성 2곳, 외성 1곳 모두 7곳이다. 4대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통로는 서문이다. 서문과 동문에는 옹성(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하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서문에는 성벽을 3미터 정도 털어내고 만든 대형 수구가 있다. 성 안의 건물터는 모두 16곳이 확인되었다.
연대산성은 장성 입암산성, 무주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 3처산성(三處山城)으로 불렸다. 1237년(고려 고종34)에 ‘백제도원수(百濟都元帥)’라며 봉기한 이언년이 담양군과 원율현(原栗縣)을 거점으로 세력화하고 산속에서 무리를 모아 촌락을 노략질했다. 원율현은 연대산성 인근에 있었기에 이언년과 그 무리는 연대산성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256년(고려 고종 43)에는 몽골 차라대 군대가 담양에 주둔했다. 이때는 담양, 광주 등 주변 지역민의 입보 산성 기능을 했던 것 같다. 
연대산성 일대의 산지는 매우 가파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볼 수 없으며, 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다. 

전봉준 장군ㆍ
기삼연 의병장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전봉준이 우금치전투(1894년 11월)에서 대패해 전세가 기울어졌다. 이에 전봉준은 연대산성에서 재정비한 뒤 재기를 계획했다. 연대산성은 일본군을 맞아 버틸 수 있을 만큼 견고했고 성 안에 우물이 9개가 있어, 식량만 있으면 오랜 기간 버틸 수 있었다. 전봉준은 식량을 지원받기 위해 쌍치면 피노리에 사는 부하 김경천의 집을 찾았다. 김경천은 전봉준을 안심시킨 뒤 밀고해 관에 의해 체포됐다. 
연대산성에 남은 동학농민군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왜군과 관군을 맞아 혈전을 벌였지만, 무참히 패배했다. 이 전투로 성 내ㆍ외 각종 시설물이 완전히 파괴됐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연대산성의 불길이 석 달 열흘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의병장 기삼연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을미사변과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분노해 나라를 구하고자 1907년 의병(호남창의회맹소)을 일으킨다. 호남창의회맹소는 호남 전역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기삼연은 겨울을 보내기 위해 연대산성으로 가는 도중 일본군의 기습으로 부상 당하고 피신했으나 추격해온 일본군에 잡혀 재판도 거치지 않고 총살당했다. 
       김상진 기자
snb1124@open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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