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 마음 담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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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 마음 담은 편지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04.28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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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하지 못하고 보낸 4개월. 감사의 달 5월을 맞아 아들, 딸, 남편, 시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사연이 애틋하다. 한 자 한 자, 정성 담긴 마음을 지면에 담았다. 올 5월에는 편지로 애틋한 마음을 전해보자.

 

어머니의 십자가

이예은(순창고 3년)


틔우지도 못한 청춘을 꽁꽁 싸매고
녹차 밭을 부리나케 건너오던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모진 소리에도 
애꿎은 타박에도
핏덩이 같은 아그들 생각하며 
꾸역꾸역 견디던 날들을 기억하십니까

겨우 십자가 하나에 온갖 삶을 걸고
새벽마다 젖은 말씀을 외우며 
해도 해도 쏟아지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당신의 세월을 팔아
내 걸음에 불을 지핀 당신을 난 기억합니다
당신의 그 십자가를 걷어찬 나를,
신마저 버린 나를 
구원하기 위해
면류관을 냉큼 벗어 던지던 
당신을 난 기억합니다


이예은 양은 어머니 최성숙(62ㆍ순창읍) 님을 생각하며 쓴 시를 보내왔다.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으시는 엄마에게 고3인 딸은 작은 부탁이 있다. “저에게 헌신하고 노력하시는 엄마, 고마워요. 그런데 이제는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저를 궁금해하시면 좋겠어요. 저도 엄마의 구원이 되고 싶어요.”

 

마음 담은 편지

 

‘서울 보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아들에게>

아들아 보아라. 봄이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벚꽃도 언제 졌는지 모르게 졌구나. 초등학교 5학년 때 공부가 뭔지 서울로 보내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너는 아니. 부모 떨어져서 철이 빨리 든 것도 마음이 아팠었다. 조금만 아프다고 해도 걱정해줘서 고맙구나. 객지에 나간 우리 큰아들 너무너무 보고 싶어 잠에서 깨어나면 꿈이 아닌가 할 정도로 생각뿐이구나. 일상이 된 한글학교 생활이 너무 행복하구나. 그리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가방을 매고 도서관에 갈 때 일이 바빠도 너희 아빠가 “잘 다녀와.” 해줄 때 마음이 고마웠어.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마음도 전하고 싶단다. 너도 건강히 잘 지내라.

박경자(75ㆍ인계기름집) 씨는 서울병원에 입원했을 때,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병원에서 자고 아침도 못 먹고 나가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네 번이나 수술했는데 그래도 건강하다며 5남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갸들 땀시 내가 두 세상을 살아.” 

 

“당신 참 일 많이 했어요. 고마워요”

 

 

 

 

 

 

 

<남편에게>

그 많은 농사일 하면서도 건강해주고 열심히 사는 걸 보면 너무 고마워요. 헛돈 안 쓰고, 애들 뒷바라지하며 다 키워, 이제 다 여의고(시집보내고), 며느리도 잘 얻었으니 더 바랄 게 없네요. 당신 참 일 많이 했어요. 수고했어요. 우리 손주들도 할아버지를 잘 따르고, ‘할아버지!’ 찾는 거 보면, 할아버지로서도 애 많이 쓰지요. 그것도 참 고마워요. 젊을 때 술 먹을 때는 밉기도 했지만, 큰일 안 내고 살아줘서 고마워요. 나도 부족한 게 있을 텐데, 남남이 만나 서로 양보하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48년이네요. 요즘은 사는 게, 살았다 할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남편이 옆에 있어 주니, 그게 참 좋네요. 허리 아픈 게 걱정이에요. 건강하세요. 

권순애(71ㆍ순창읍 남계) 씨는 시장에서 마늘가게를 한다. 가장 애틋한 사람은 남편이다. 금과 배미산에서 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하신 말씀을 기자가 받아썼다. 무서울 정도로 일하면서 자식들 떳떳하게 잘 기른 남편이 고맙고 듬직하다.

 

“이제 엄마 걱정 말고 네 삶 살아라”

 

 

 

 

 

<딸에게>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애들 밥과 간식 챙겨주랴. 학교 가서 컴퓨터로 수업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고생이 많니. 그런 와중에 엄마까지 신경 써서 너무 미안하고 고맙구나. 엄마가 당뇨에 혈압에 합병증에 무릎도 아파서 서울 성모병원에서 수술까지 했으니 딸 집이 곁이라, 엄마 신경쓰랴 직장가랴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엄마는 다 안다.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좋다는 것은, 다 사서 택배로 부쳐주고 비싼 약과 좋은 것은 다 보내주느라고 얼마나 신경 썼니. 엄마가 몸이 완치되면 너의 은혜 잊지 않겠다. 차가버섯, (중략) 몇 가지 떡까지 보내줘서 잘 먹어서 이 정도라도 회복한 것은 우리 딸 덕분에 많이 좋아진 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 잊어불고 너의 생활에 신경 쓰고 잘 살아라. 은영아 엄마한테 너무 애써서 참으로 고맙다.

조옥순(79ㆍ순창읍 순화)씨는 자식에게 생전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5남매 중 큰딸 은영 씨가 각별히 시리다. 해준 것도 없는데 엄마를 생각하는 게 그렇게 지극할 수가 없다. 몸이 아파도 “딸을 봐서라도 내가 일어나야겠다”며 기어코 한술을 뜬단다.

 

“오래오래 계셔 주세요. 사랑해요.”

 

 

 

 

 

 

 

<엄마(시어머니)께>

사랑하는 엄마! 철없이 엄마라고 불러 죄송합니다. 20여년 세월을 살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엄마 며느리로 살면서 행복했어요. 조금만 이해하고 사랑으로 대화하면, 엄마 심정 이해하고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서로 감싸며 더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엄마,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 죄송해요. 늘 그 자리에 계시며 지켜주실 줄 알았는데 겨우내 병원에 누워계실 때 마음이 매우 아팠어요. 엄마가 계셔 시골 일을 잊고 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말 많고 투정만 부렸던 며느리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더 성숙한 며느리로 살려고 노력할게요. 지금 그 자리에 오래오래 계셔 주세요. 우리 재민, 재희가 할머니 사랑하고 있잖아요. 엄마 사랑해요. 

김선희(53ㆍ순창읍)씨가 시어머니 윤선순(85) 씨에게 쓴 편지를 어렵게 받아 싣는다. 논둑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고부. “시어머니가 아니고 엄마죠. 투정도 받아주시고…” 시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안 그래. 아무리 그래도 엄마만 하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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