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28)/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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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28)/ 여행
  • 선산곡
  • 승인 2020.05.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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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1)
 

모나코왕국. 지중해가 남청빛으로 가라앉아있다. 예전 미술을 가르치며 프랑스의 건축가 가르니에를 언급했던 적이 있다. 사실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을 설계한 그가 모나코왕국 몬테카를로의 카지노와 목욕탕 등도 설계했다더라, 그렇게 들먹인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뜬금없는 일이었다. 그저 교과서적인 설명에만 그치기 일쑤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누군들 머릿속에 새겼을까. 그런데 지금 내가 모나코 왕국의 몬테카를로 카지노 건물 앞에 서 있다. 피상에 머물러있던 대상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처럼 가슴 설레는 일은 없다. 
조금 까다롭지만 그래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카지노 입장이었다. 관광객들에게만 도박이 허용된다는, 말로만 듣던 건물의 내부는 우선 대리석 기둥이 위압적이었다. 말 그대로 마블링 무늬가 선명한 갈색 석조기둥 장식은 이오니아식, 올려다본 천정은 충분히 예술적이었다.
카지노 앞의 기념품 가게에 들러 자동차 열쇠 꾸러미를 하나 샀고 바로 옆에 있는 하얀 천막 지붕으로 된 노천카페에 들어갔다. 건장하고 잘생긴 청년이 마치 보안요원처럼 정장하고 손님을 살피고 있었다. 통제가 아닌 질서를 유지시키는 그의 손엔 금속탐지기가 들려 있었다. 커피잔에 몬테카를로라고 찍힌 크림 젓개가 꽂혀있었다. ‘당신은 이곳에 왔습니다.’라는 안내 같기도 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휴양도시. 그러나 도시가 아닌 국가다. 엄밀히 말하면 대공국. 세계에서 두 번째 작은 나라지만 가장 부유한 나라라고 한다. 세금도 없는 이 나라의 공무원들은 프랑스 사람들이며 인구는 몇 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바다 연안에 호화 요트들이 떠 있다, 그 안에 두둥실 몸을 실어볼 생각은 아예 해보지 않았지만, 지중해를 안은 나라들의 풍요가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상상으로만 지녔던 왕궁의 위엄은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인 것도 아니요, 육중한 무기를 든 철가면을 쓴 기사가 버티고 선 곳도 아니었다. 셔틀버스로 2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남쪽 언덕에 있는 소박한 궁이었다. 궁전의 뜰은 광장처럼 개방되어 있었다. 요새로도 쓰였다는 궁이었지만 왕실의 위엄은 근위병들에서나 찾을 수 있는 건물이었다. 왕궁을 지나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작은 골목에 들른 레스토랑 또한 너무 서민적이었다. 
그레이스 캐리. 이 나라의 왕이었던 레니에 3세와 결혼한 허리우드 스타. 여성 혐오자였던 히치 콕이 자기 영화에 출연하는 그레이스 앞에서만큼은 예외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매력 때문이었다니 아이러니하다. 그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잠들어있는 모나코성당(성 니콜라 성당)이 그 골목을 벗어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당의 바닥에 안장된 왕비의 무덤 표지에 정작 이름은 새겨져 있지 않다. 결혼식을 올린 자리에서 잠들고 있는 왕비. 1982년 장례식 때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울렸다고 한다. 
성당에서 나와 바라본 지중해에 햇볕이 느리게 뻗어있었다. 이국의 오월에 천혜의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이 꼭 환희만은 아니었다. 머릿속을 맴돌던 우수에 찬 바버의 음률이 현실로 반사된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왕비의 사진이 있는 표시판 앞에서 찍어보는 한 장의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도 영화(榮華)도 부귀도 한낱 물거품인데 먼 동방의 해 뜨는 나라에서 온 여행객은 작은 어깨통증 하나 지닌 채 세기의 스타를 회상하고 있다. 공교로웠는지는 몰라도 모나코 왕국에서만큼은 동양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아아, 나는 분명 이방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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