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계엄군에 쫓겨 금남로 아무 건물에나 쑥 들어간 날
주인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손을 잡아 숨겨주던 날
건물 문을 부수고 계엄군이 뒤지기 시작하자
뒷문으로 빼주던 날
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무조건 올라탄 날
계엄군이 그 택시마저 세워 나를 끌어내려던 날
택시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가
내 아들이야
머리째 가슴팍에 끌어안아준 날
나는 살았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엄마 맞습니다
나를 살려낸 엄마입니다
우리들 엄마
그 뒤
금동 사창가 허름한 사무실에서
검은 사람들이 건너편 여인숙에서
-석 달 넘게 감시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날의 기록과 테이프와 판화들을 만들고 있을 때
세상으로 들고 나갈 때
밤새 콜박스 일 하던 누이들이
골목 양쪽에서 번갈아 망을 봐주었습니다
세탁소 아저씨는 연락병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오월을 지켜준
우리들 누이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때
그 엄마 그 누이들을 찾습니다
함박꽃 함박함박 피어난 오월
꽃 속에 숨어 있는
우리들 엄마와 누이들 찾아
망월동에 왔습니다
살아남은 목숨 평생 미안하여
밥 안 넘어가는데
푸짐하게 피어난
하얀 이팝나무꽃
그니들이 지어내어준 쌀밥 같아
나는 또 꾸역꾸역 살아납니다
* 장진희 씨는 곡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인근 재래시장을 오가며 장사합니다. 매월 1일, 6일, 순창 장날에는 진도산 미역을 팝니다. 금동 친구가 겪은 80년 5월 광주를 회상하며 쓴 글을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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