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1) 회문산 자락 구림면 안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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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1) 회문산 자락 구림면 안정리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6.0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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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1)

구림면 안정리(安亭里)는 북쪽으로는 회문산을 경계로 임실군 강진면, 동쪽으로는 임실군 덕치면, 서쪽으로 구림면 금창리와 금천리, 남쪽으로는 구림면 통안리를 경계로 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안심ㆍ미륵정이ㆍ산내ㆍ죽림 마을을 합하고 안심의 ‘안’자와 미륵정이의 ‘정’자를 합해 안정리(安亭里)로 개칭했다. 안정리의 행정리는 안심마을과 산내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미륵정이마을과 죽림마을이 있다. 2020년 5월 26일 현재 안정리 면적은 12.35 킬로제곱미터(㎢)이고, 105가구에 인구 184명(남자 96명, 여자 88명)이다.

안심마을과 산내마을

안심마을의 첫 마을이름은 안시내라 했고, 이후 안심이라 했다. 안시내라는 이름의 연유는 기러기가 시내로 내려오는 홍안남비(鴻雁南飛) 형상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숨어 있기에 좋아 안심(安心)이란 이름이 나왔다고도 한다.
산내마을은 원래 산안이라 했는데, 이는 산속이란 말이다. 실지로 대숲말(죽림마을) 쪽에서 동쪽으로 뻗어 온 산맥이 앞을 가리고 서 있기에 산속에 들어 있는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안심마을 전경.
▲산내마을 전경.
▲죽림마을 전경.

미륵정이 마을 유래

회문산과 성미산 사이에 흐르는 구림천변에 미륵정이라는 자그마한 자연마을이 있다. 이 마을이 미륵정이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며칠에 걸쳐 폭우가 쏟아졌다.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도 범람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을이 물에 잠길 것을 염려한 마을 사람들은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기로 했고, 날은 어두워졌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쏟아지는 비에도 더는 물이 차오르지 않았다.
세찬 비는 계속되었고 이윽고 먼동이 텄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게 뭔 기둥이여!” 그 소리에 모두 마을 앞쪽을 내다보니 전에는 없던 돌기둥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돌기둥 위로 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마을로 내린 빗물을 돌기둥이 끌어올렸고, 그러다 보니 물이 마을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비가 그치고 마을사람이 그 기둥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돌기둥이 아니라 돌미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미륵불이 마을이 물에 잠기지 않게 하여 집과 재산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 온 돌미륵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고마운 돌미륵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좀 더 가까이 모시고자 마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이후 매년 정월에 날을 받아 돌미륵 앞에서 마을 제사를 지냈고, 미륵을 섬겨 득남한 집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정화수를 떠다 놓는 게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돌미륵의 신통력은 주변 마을에까지 알려져서 많은 사람이 정성을 드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 마을을 미륵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미륵은 마을(미륵정이) 밭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입석불로서 마모가 심하지만, 불상 형태는 정교하고 제작연대도 오래된 작품으로 보인다. 광배를 포함해 높이 180센티미터(㎝), 광배 넓이는 60㎝, 두광은 지름 50㎝, 불두의 길이는 38㎝이다.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 여래상이다. 
마을 미륵은 대체로 마을 입구에 위치하는 경향이 있다. 안정리 미륵도 처음에 사찰에 있었으나 사찰이 폐사되었거나, 폐사된 절터에서 석불상을 마을로 옮겨 왔을 가능성도 있다. 군에서 단청까지 한 보호각을 새롭게 지어 현재는 마을 미륵보다는 군청에서 보호하는 미륵으로 정착했다.

안정리 계곡

안정리 계곡은 회문산과 서쪽 장군봉(780m) 사이의 안부에서 시작해 추령천과 만나는 산내교에서 끝나는 금천천을 따라 형성되었다. 안정리 계곡으로 들어가는 산내교 부근의 지형은 하안단구를 이룬다. 단구를 지나 계곡으로 접어드는 초입보다 골짜기 안쪽에서 계곡의 폭이 더 넓어진다. 길이 3㎞의 안정리 계곡에는 안심, 산내, 죽림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안심마을은 안시내와 미륵정으로 나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을 통합하면서 합쳐졌다. 

▲회문산과 서쪽 장군봉(780m) 사이의 안부에서 시작해 추령천과 만나는 산내교에서 끝나는 금천천을 따라 형성된 안정리 계곡.

오도굴바위

산내마을 남쪽에 있는 오도굴바위에 뚫려있는, 신비스럽게 생긴 동굴이다. 
옛날에 이 동굴 안에서 한 스님과 동자승이 살았다. 두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식수가 바위에서 나왔는데, 욕심 많은 동자승이 물이 많이 나오게 하려고 물구멍을 건드렸다. 이후 물이 나오지 않자 살지 못하고 떠나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재도 동굴 천장에서는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고 하며, 무속인들이나 민족종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 치성을 드린 흔적이 보인다.

▲오도굴바위.

만일사, 순창고추장 시원지

만일사(萬日寺)는 회문산 자락인 안정리 337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빼어난 산세로 수많은 고승이 찾아들고 배출되었다. 백학명(白鶴鳴) 선사와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도 이곳에서 수도했다. 1658년(효종9)에 건립된 만일사 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와 1760년(영조36)에 간행된 《옥천지》에 의하면 만일사는 백제의 원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고려 말 조선 초, 무학대사에 의해 중창되었다. 만일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과 중건 과정을 거치게 되고, 한국전쟁(6ㆍ25)으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지만 1954년으로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겨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새로 건립했다. 만일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90년대이다. 
만일사라는 이름은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만일(萬日) 동안 불공드려 이성계가 임금에 오르게 됐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산(남원시 지리산 부근)대첩으로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는 만일사에 기거하고 있는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순창에 들렀다. 한 농가에서 순창고추장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초시’를 먹어보고 이 맛을 잊지 못해 임금에 오른 후 진상토록 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고추가 한글로 쓰인 최초의 기록은 《구급간이방》(1489년)에 ‘고쵸’로 표기돼 있다. 《훈몽자회》(1527년)에도 ‘고쵸’로 나온다. 조선시대 어의 이시필(1657년~1724년)의 《소문사설》에는 순창고추장의 제조법이 최초로 기록돼 있다. 
만일사 경내에 있는 순창고추장 시원지 전시관은 총 3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제1공간은 순창고추장 시원지, 제2공간은 순창의 발효환경과 균주의 우수성, 제3공간은 발효식품의 산업화와 전통성 등이 전시돼 있다.

▲순창고추장 시원지인 만일사 전경.

회문산역사관

회문산역사관은 항일 민족운동 무대이자 6ㆍ25 전쟁을 전후해 빨치산의 근거지로 빨치산 토벌전투에서 수많은 군인과 경찰관, 양민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 회문산에 건립돼있다. 
회문산역사관은 2000년 80.16제곱미터(㎡) 규모로 빨치산 사령부의 벙커 생활 모습을 구현ㆍ전시했으나 2011년 7월 11일에 빨치산 사령부를 철거하고, 104㎡의 회문산 역사관을 신축해 개관했다.
전시실에는 회문산 명소인 천근월굴(天根月窟), 회문산 자락에 있는 천주교 성지, 만일사와 순창고추장에 대한 이야기, 항일의병활동, 풍수지리와 순창의 풍수지리, 6ㆍ25 전쟁에 대한 내용이 벽화 형태로 전시돼 있다.

▲회문산역사관.

6ㆍ25 양민 희생자 위령탑

한국전쟁(6ㆍ25) 때 좌우익 대결로 희생된 민간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6ㆍ25 양민 희생자 위령탑’은 안정리 회문산 자연휴양림 내에 있다. 언덕 위에 2단으로 된 계단과 기단비가 있으며, 정면에서 볼 때 좌측에는 여인이 쓰러진 사람을 안고 있는 상이, 우측에는 철모를 쓴 사람이 쓰러진 사람을 안고 있는 상이 있다. 그 안쪽으로 좌ㆍ우측에 조각이 있다. 중앙에는 높이 10여 미터의 화강암 돌기둥이 있고, 그 앞쪽에 양손을 하늘로 뻗은 여인이 서 있다. 여인의 위쪽으로 ‘6ㆍ25 양민 희생자 위령탑’이라 쓰여 있고, 여인상의 아래쪽에 <외로운 혼백을 위하여>라는 글이 있다. 순창 출신 시인 권진희가 짓고, 여태명 (원광대 서예과 교수)이 쓰고, 정진환(원광대 환경조각과 교수)이 조각했다. 구림면 청년회 주관으로 매년 6월 25일에 6ㆍ25 양민 희생자 위령탑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6ㆍ25 양민 희생자 위령탑.

회문산 자연휴양림

회문산 자연휴양림은 옛 빨치산 간부 훈련장인 노령학원이 있었던 회문산 장군봉 중턱에 87만평 규모로 1993년에 조성됐다. 숙박시설과 휴양시설, 편익시설, 위생시설, 기타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봄에는 화려한 산야초 꽃이,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아름답다. 다양한 활엽수종은 여름에는 우거진 녹음을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산야초 꽃이 만발케 한다. 이밖에 단체 탐방객들을 위한 숲속 수련장도 있다. 휴양림은 1일 최대 수용인원은 500명이며, 사전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

▲회문산 자연휴양림 입구. 위로 휴양관들이 있고 야영장은 더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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