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넘고’ 관습을 ‘넘는’ 순천시 ‘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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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넘고’ 관습을 ‘넘는’ 순천시 ‘넘장’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06.11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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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도 가는 장터 , 순천시마을공동체 이야기
▲‘그 물건이 필요한 이유’ 필요경매에 참여해서 이야기 나누는 주민들.

작은 공유공간 ‘너머’, 에 모인 30여명

지난 5월 30일 순천 ‘넘장’이 열렸다. 작년에 처음 시작해 4회째를 맞는 ‘넘장’은 모두 주인이 되는 장터, 돈이 없어도 갈 수 있는 장터이다. ‘너머’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기존의 질서나 관습을 넘어보자’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지난 3회 넘장은 ‘코로나를 넘자’는 의미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이 장터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이들은 순천 저전동의 공유공간 ‘너머’를 사랑하는 지역주민들이다. 공유공간 ‘너머’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자발적으로 유지해나가는 작은 주택. 너머에서는 책 모임이나 강연, 공연 등이 자유롭게 열린다. 장이 열린 곳도 이 집 마당 안팎이다. ‘장터’하면 넓고 큰 거리를 떠올리는데 의외였다. 작은 집 마당에는 30여명의 사람들이 물건을 내놓고 팔거나 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터에는 지압안마 배우기, 칼 갈아주기, 손바느질, 명패 그려주기, 모종 나누기, 타로, 우리밀 빵 등 이용료는 무료이거나 몇 천원을 넘지 않았다. 김바다(10ㆍ순천 조곡동)어린이가 명패를 그려주고 1000원을 받았는데,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인기를 끌었다. 바이런케이티 상담기법 배우기, ‘넥스트젠’(애니메이션 이름을 따 만든 생태 공동체 모임)을 초청해 이야기 나누기 행사도 있었다. 

모두의 서랍, 모두의 지갑, 모두의 냉장고

집 안으로 들어가 봤다. 거실에는 기후위기 모임 후기로 적은 팻말, “멀뚱멀뚱 있을 때가 아닌데’나, ‘우리가 퍼머컬쳐, 꿈꾸는 마을’이라는 팻말도 보였다. 괴산에서 온 학생들이 공간을 이용하고 남긴 감사 편지 등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거실 한쪽에는 ‘모두의 서랍’과 ‘모두의 지갑’이 있다. 이 서랍 속 물품은 누구나 기부해서 채워넣고, 나눈다. ‘모두의 지갑’ 통 안에는 현금과 지갑이 들어있었다. 주방에는 ‘모두의 냉장고’가 있어 누구나 먹을 거리를 넣고, 꺼내 먹을 수 있다. 집안에는 주막이 열리고 있었다. 쌀과 효모로 주민이 직접 담근 술 한 잔에 삼천원. 안주로 나온 수박과 떡은 무료였다. 모두 기부받은 것이었다.  
지난 넘장을 모두 참여한 토종 텃밭농부 김미애(57ㆍ순천 저전동) 씨는 씨앗을 가지고 왔다. “서리태, 메주콩 심을 때가 되어서 나누고 싶어서 왔어요.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고, 그러니 제가 즐겁죠.”
천원 받고 칼을 갈아주는 이르(27) 씨는 “‘넘장’에서 뭘 하면 재밌을까 고민하다가, 칼을 갈아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나무 카빙(carving, 조각술) 하는 걸 좋아해서 칼을 다듬을 일이 많거든요. 연습삼아 하니까 저도 좋습니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돈을 낼 때, 엽서 몇 장이 섞여 있었다. 임경환 센터장(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이 발행한 화폐였다. 말이 발행이지, 그냥 엽서에 자신의 이름과 금액을 쓴 것이다. 이 화폐는 장터 여기저기서 현금처럼 유통이 되고 있었다. 

마당, 가족을 넘어 이웃을 만나는 장

이 특이한 장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제안한 주민 박경숙씨는 “공유공간 ‘너머’ 천일 기념할 때, 사람들도 잘 안오고, 기부도 줄고, 비용은 계속 나가고, 그만해야겠다 할 때였어요. 그만두기가 너무 아쉬워서 뭐라도 해보자 제안했어요.”
인견으로 목욕수건을 만들어 나눠주는 손채영(52ㆍ순천 연양동) 씨는 “돈 없어도 올 수 있는 장을 생각해보았어요. 한 번 만나 기획했는데, 예상보다 풍성해진 거예요. 지금은 마당문화가 없어졌잖아요. 예전에는 마당에서 다양한 일이 일어났지요. 잔치도 하고, 가족을 넘어 이웃과 만나는 장이었고요. 장터 처음 열 때, 마당이 웅성웅성하는 게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가족이 된 것 같아서 행복했어요.” 
이어지는 시간은 ‘필요 경매’. 이 경매는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사람이 경매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사람이 물건을 가져가는 경매이다. 경쟁이 붙으면 관객들(?)이 거수로 결정한다. 제일 처음 나온 물건은 앨범이었다.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버리는 세상에 앨범이 필요할까? 처음 손을 든 주민이, “텃밭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아이들과 텃밭에서 찍은 사진이 많은데, 앨범에 꽂으면 아이들에게 기념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깜짝 기부가 이어졌다. “제게 사진 프린터기가 있어요. 인화지도 있고요. 필요하면 빌려드릴게요.”, “저는 카메라 있어요. 카메라 빌려드릴게요.” 쟁쟁한 경쟁을 거쳐 결국 앨범은 텃밭교사가 가져갔다. 
다음 물건은 명품 지갑. 경쟁자 세 명이 나섰다. “부탄에서 10년 전 산 지갑이 낡았다. 언젠가 지갑이 나타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지지발언도 있었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이 많아 필요할 거예요.” 다른 주민도 손을 들었다. “비싼 지갑이 욕심이 나서, 자동으로 손이 올라갔어요.” 곡성에서 온 마을활동가도 손을 들었다. “제가 하는 일이 여러 가지라 카드 여러 장이 들어가는 지갑이 필요합니다.” 거수 결과는 곡성 마을활동가에게 돌아갔다. 그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자신은 10년 된 부탄 지갑을 넘겨받고, 명품 지갑을 양보하는 것으로. 경매는 계속되고 웃음폭탄이 이어졌다. 저녁이 되면서, 한 가지씩 들고 온 음식으로 차린 ‘너머 만찬’으로 마무리를 했다. 

개인화폐, “쓰는 곳이 믿어주는 곳”

두런두런 개인화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너머’를 함께 해온 장용창(통영)씨가 먼저 시작했다. “이 돈을 받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내밀 때는 미안해. 그 이유는 내가 착해서가 아니야. 이 시스템을 안 믿어서인 것 같아. 진짜 돈이 아니니까. ‘이게 활성화되려면 내가 먼저 믿어야겠구나’ 싶어.”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람에게 신뢰가 있어도 그 사람의 상태를 살피는 것 같아. 원가가 들어간 것에는 못 쓰겠어.”/“큰돈과 작은 돈의 느낌이 달라. 작은 돈을 줄 때는 마음이 가벼워. 그런데 만원 넘어가면 미안해.”/“나는 어떤 사람에게는 큰 돈을 줘도 가벼워. 이 사람이 제대로 쓰겠구나 싶어서.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아.”/“공동체에 대한 믿음의 레벨이 달라. 같은 돈이 아니야.”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통되는 거잖아. 우리가 진짜 대안적 공동체가 되려면 다 믿어야 해.”/“돈을 쓰면서 고민하게 돼. 이 장이 계속될까? 내가 이 사람들을 믿는가?”
“다음 장, 열리는 거 맞지?”
장씨 질문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씨가 “안심이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웃음이 터졌다. 골목책방 심다 주인인 김주은씨가 말했다. 
“우리 가게에 와. 쓰게 해줄게.”
“정말?” 다시 한번 장씨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믿어주는 곳에서 쓰면 돼지.”/“쓰는 곳이 믿어주는 곳이지.” 
화폐가 무엇이고,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상품은 무엇이고, 누가 상품을 가져가야 하는지, 여태껏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들이 밑바닥부터 흔들리는 것을 ‘넘장’에서는 즐겁게 경험할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너머’에서 시작된 이 흔들림은 더 커질 것이며, 이 마당, 마을이 ‘너머의 세상’을 가져올 진원지가 되리라는 것이다.   

▲토종씨앗, 우리밀빵, 농기구, 바느질 가게, 타로 가게, 칼 갈아줍니다. 다채로운 넘장
▲소소한 가게.
▲예취기날을 재활용한 텃밭 호미.
▲손수 바느질한 제품들.
▲천원이면 팻말을 그려준다.
▲공유공간 ‘너머’ ‘모두의 냉장고’
▲모두의 지갑, 현금이 들어있다.
▲농기구 나무자루를 이용한 건강체조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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