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30)/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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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30)/ 손톱
  • 선산곡
  • 승인 2020.06.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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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하는 순간 찌릿한 통증. 손톱을 너무 깊게 깎았다. 침침한 눈 때문에 저지르는 종종 있는 실수다. 조금만 자라도 결기가 생기는 손톱을 자주 깎아야 하는 것도 세월 탓이다. 요즘은 가끔 팔자에 없는 매니큐어를 칠한다. 거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손톱 끝이 자주 갈라진다. 머리를 감을 때 갈라진 손톱에 걸리는 감촉처럼 불쾌한 것은 없다. 살점 가까이 깎다 못해 할 수 없이 바르는 것이 그 매니큐어다.
나이 들어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머리 염색을 했다. 그 염색약이 실수로 손톱에 묻은 적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머리칼에 바르는 색의 위장(僞裝)이 손톱에도 묻었다. 전혀 달라 보여도 손톱과 머리칼은 상관(相關)관계다. 인간에게 잘라내도 길었느냐는 것은 머리칼과 손톱밖에 없다. ‘손톱에 묻은 염색약’. 답은 흘러야 할 ‘시간’이다.
70년대 초 이발소에 가면 손톱 소제를 해주는 아가씨가 있었다. 이발사는 머리를 깎고 아가씨는 그 옆에 앉아 손톱을 손질해 주었다. 사각사각 머리 잘리는 가위소리, 나른하게 밀려오는 잠. 머리 못지않게 손을 만지작거리는 그 시간만큼 손님으로서 최고의 호사였다.
“참 귀티 있는 손이네요.”
내가 맡긴 손톱을 다듬어 주던 아가씨가 했던 말이었다. 남자의 손이 아름답다기보다 귀티가 있다는 말에 현혹된 것도 사실이었다. 손가락 끝 살점과 나란한 타원의 손톱선. 어느 것 하나 뭉툭하지 않고 조금은 길쭉한 길이가 내가 봐도 밉지 않고 단정했던 손톱이었다.
작은 형의 결혼식 날 택시에서 내릴 때 택시 문틈에 왼쪽 엄지손가락이 낀 사고를 당했다. 무지무지한 아픔이었다. 이후 멍든 손톱이 천천히 빠지기 시작하더니 몇 달 걸려 새로 돋기 시작했다. 한 번 빠졌다 재생된 손톱의 모양은 예전 모습으로 자라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거칠다는 느낌이 수십 년 그대로다. 지금의 손톱, 예전의 분홍빛 가까운 건강한 손톱이 아니다. 아마도 귀티도 사라진 거친 손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 모두 자기 손톱은 자기가 깎는다. 아들의 손톱은 고등학교 졸업 때 가지 내가 깎아주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가기까지였다. 군인이 된 아들을 면회하러 간 날 손톱을 깎아주마 했더니 ‘이젠 제가 깎습니다.’ 조금 서운했다. 아들 손톱을 깎을 때의 은근했던 마음의 고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을까.
예전에 아버지의 손톱은 내가 깎아드렸다. 아버지의 손을 만질 유일한 기회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손은 선비의 손이었다. 땅을 만지는 손은 아니었지만, 붓을 쥐셨던 손이었다. 아버지의 손은 어머니의 손보다 더 부드러웠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배앓이가 유난히 심했던 유년 시절에 내 배를 쓰다듬어주시며 불러주시던 아버지의 노래였다. 노래는 서툴게 부르셨지만, 손의 부드러운 촉감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그 기억을 지니고 아버지의 손톱을 깎아드리는 기분은 나만의 것이었다.
“늬 아부지 손을 닮았구나.”
어머니는 가끔 내게 그러셨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많이 닮았다. 아버지의 섬세함에 미치진 못해도 손재주가 닮았다는 말도 된다. 아들의 손톱을 깎아줄 때마다 아버지의 손톱을, 아버지의 손을 생각했다. 손을 내맡긴 아버지의 표정을 생각했다. 그 생각으로 아들의 손톱을 깎았다. 먼 훗날 내 아들도 내 손톱을 깎아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은 내 손톱을 깎아줄 수가 없다. 아들은 언제 내 손톱을 깎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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