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5) 마늘을 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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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5) 마늘을 캐며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0.06.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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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을 캤다. 
마늘 캐는 일은 마냥 쉬울 줄 알았다. 손으로 마늘대를 잡아당기면 쑥쑥 뽑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잎도 시득시득 대만 남은 마늘인데도 땅속에서 버티는 힘이 여간 센 게 아니다. 그래, 괜히 힘센(!) 마늘이겠어? 
맨손으로 뽑기는 포기하고 쪼그리고 앉아 호미 한 자루로 결투를 건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 초보 티를 내느라 서툰 호미질에 마늘이 여기저기 찍힌 채로 제 몸을 드러냈다.
호미로 못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마늘 캐기에 실패다. 물론 ‘호미’ 탓은 아니고 몸 쓰기, 농기구 쓰기를 한참 배워야 하는 농부 탓이다. 한 삼년 써본 호미는 정말 신기(?) 신통(?)했다. 못하는 게 없었다. 죽어도 못 이긴다는 풀, 그래도 한 번 해보는 거라는 풀매기는 기본. 흙을 살짝 파내고 모종을 심고 북돋기를 하면 뭐 요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뚝딱 텃밭이 풍성해졌다. 텃밭 한 귀퉁이에 딸기밭을 만들고 어여쁜 돌멩이로 경계를 만들 때도 호미가 가장 요긴했다.
그런데, 이건 호미의 배신이다! 작년에도 마늘 캐기를 했을 텐데… 어떻게 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올해와 비슷한 과정이었다. 마늘 창도 그즈음 마련한 것이었다. 작년에도 땅이 너무 딱딱하다. 마늘대가 약하다. 핑계를 찾았다. 그 사이 어머니는 벌써 반 두둑을 캐내고 나를 보고 웃으신다. 역시 호미의 달인이다.
나는 호미는 집어던지고 전쟁이라도 나서듯 마늘 창을 찾아 왔다. 마늘 창은 커다란 포크처럼 생겼다. 이건 쉽다. 마늘도 찍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호미로 마늘을 캐는 건 어려웠던 게 분명해. 이 도구를 만든 이유가 이거였어. 어머니와 경쟁은 포기하고 중얼중얼 마늘을 캤다. 
마늘 창에 쓰러진 마늘을 보고 있자니, 마늘 뿌리가 어쩐지 누군가의 산발한 머리카락 같기도 해서 괜히 맘이 찡하다. 한 줄로 나란히 누운 마늘은 한나절 햇볕에 말리기로 한다. 마늘의 한 생애가 끝났다.
마늘잎이 시들어가는 사이 텃밭 뒤쪽 노란 꽃이 피었나 싶었던 오이는 넝쿨을 다 올리기도 전에 여기저기 오이를 낳았다. 한 뼘 크기로 제 몸을 키우고 제법 사나운 가시도 일궜다. 
오이 하나를 따다가 가시에 찔렸다. 콕, 하니 찌르르하다. 물론 피가 날리는 없다. 오이 가시 가 살 속을 파고들어 피를 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오이 가시가 제법 따갑구나 하는 사실이 퍽 반갑다. 숱하게 만난 오이를 볼 때마다 참 순하구나 생각했다. 애호박처럼 말이다. 우둘투둘한 오이 껍질을 손으로 슥슥 문지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밭에서 만난 오이는 순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린 오이 가시에는 독성이 들어있다고 한다. 초식동물이 자신을 먹지 못하도록 한단다. 
생명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들이 어찌 순하기만 할까? 
마늘도 그렇다. 가을에 심을 마늘 한 쪽이 땅속에 한겨울을 나는 것도. 달랑 한 쪽에서 봄이 되면 가닥가닥 뿌리를 곧고 깊게 내리고 어린 마늘잎을 길러내고, 마늘종을 솟아오르게 하고, 온전히 통마늘이 된다. 거기에 아리고, 맵고, 쓰고 단 그 모든 맛이 있다. 
마늘 캐기를 끝내고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점심나절부터 꾸물대던 날씨가 빗방울을 뿌릴 모양이다. 역시 어머니가 믿는 설산 비 예보가 맞는다. 설산 쪽이 시커멓게 어두워지면 ‘언제든’ 비가 내리기 마련이다. 
이 비가 내리면 호박이랑 고추가 자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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