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31)/ 묵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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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31)/ 묵객
  • 선산곡
  • 승인 2020.07.0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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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객(墨客)

 

 

 

 

 

 

 

이른 아침 전화를 받았다. 고향의 문우라는 연(緣)은 확인했지만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 소개를 한 뒤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잘 아는 사람이라고 대답했고 그 순간 ‘운월객(雲月客)’이라 했던 그의 아호를 떠올렸다.
“그 사람이 가끔 선생님을 찾곤 했습니다. 전화번호를 알려 드려도 되겠습니까?”며칠 뒤 운월객의 전화를 직접 받을 수 있었다. 목소리가 그 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전화하기까지 망설였다는 그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나간 세월이 너무 깊었기 때문이었다. 
문학에 대한 정열을 끌어안고 수소문 끝에 만난 사람이었다. 문학의 가치 하나로 맺어진 상존의 관계는 동인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로의 입대(入隊)로 어쩔 수 없이 소식은 끊겼다. 십여년이 흐른 뒤 어느 소도시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내 근무처 가까이 그의 작업실이 있었다. 가끔 들렀던 내 기억은 선명한데 그는 그 시기의 나를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잊고 싶었던 고난의 시기였을까. 누구보다도 좋은 글을 썼던 그였다. 삶에 쫓겨 한때 지녔던 정열이 이제 부질없다 생각했던 시기는 아니었을까. 나 또한 그런 실의에 젖어있었던 때였고 그 만남은 그래서 늘 쓸쓸하기만 했다.
어느 날 그의 작업실이 텅 비어있었다. 서울로 이주했다는 주변 사람의 말을 듣고 돌아선 발걸음이었다. 서울이 아니고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그 무렵 나도 고향을 떠나 지금의 자리로 삶의 터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같은 성중(城中)에서 40년 가까이 그걸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수십년 된 잡기장 한 페이지에 적어 놓은 시가 있다. 잡기장을 넘길 때마다 거기 적힌 시 한 편을 읽곤 했다. 입대 전 그가 내게 보낸 시였다. 

운산 월곡(雲山月谷)

길고도 아득한 이국(異國)의 꿈처럼
낭만(浪漫)이 젖어드는 초여름의 대낮에
-그대 산곡의
푹 발 담고 두 눈을 껌벅이며
두고 온 추억(追憶)들을 들이밀어 보려는
-운월객

운산 월곡
아담하기조차 그지없는 대명사
요산 요수(樂山樂水)요 
-인생 도여(人生道旅)라터니 그대가 건가
아님 마냥 즐겨볼 참인가

초로(草路)라터니 황무지(荒蕪地)를 
-헤매는가
운수 적객(雲水適客)이라터니 옛이 허사던가
산곡이라터니 화엄대종(華嚴大宗)인가
백대묵객(百代墨客)이라터니 
-칠보운(七步韻)인가.

당시로서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취(高趣)의 시구가 분명했다. 그래선지 쉽게 잊히는 운(韻)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인생도여(人生道旅)의 끝에서 그 시를 읽는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운월객이 아닌 고원(古園)으로 아호가 바뀐 그 묵객(墨客)은 지금 얼마나 변해있을까. 재회 기약 칠월. 그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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