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4) 복흥 서마리 - 박유전 명창 출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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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4) 복흥 서마리 - 박유전 명창 출생지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7.0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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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4)

서마리(瑞馬里)는 복흥면 서북쪽에 있는 법정리다. 서편제를 창시한 박유전 명창의 출생지와 추령장승촌 등이 유명하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정, 공근, 서지, 증산, 상마치, 하마치를 병합하면서 ‘서’ 자와 ‘마’ 자를 합해 서마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서지ㆍ하마ㆍ추령 마을 등 3개로 구성돼 있다. 2020년 6월말 기준 서마리 인구는 102가구, 213명(남자 108, 여자 105)이다. 

 

서지ㆍ하마ㆍ추령 마을 유래

서지(瑞芝)마을은 600여년 전 인근 마재마을이 전소돼 그곳에 살던 하 씨가 이주해 마을이 형성되었고, 임진왜란 때 광산김씨(光山金氏)가 피난 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번창했다고 전한다. 마을이 상서로운 지초(芝草)를 바라보고 달려오는 사슴 형상(瑞芝走鹿ㆍ서지주록)이라 서지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하마(下馬)마을은 산태골(산태울) 주변에서 선사시대 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보인다. 복흥현 시절에는 군사 조련용 사정(射亭)이 있었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상 사수부동지격(四獸不動之格)이라 하여 대단히 길지(吉地)라 한다. 마을 뒷산이 호랑이가 개를 보고 쫓아가려는데 앞에 사자가 버티고 있어 가지 못하고, 사자가 호랑이를 쫓아가려 해도 바로 앞에 쥐가 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백방산 아래 명당을 찾는 풍수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 피신해 살았다고 한다.
추령(秋嶺)은 정읍시 내장동과 경계를 이루는 재(고개)로 원래는 갈령(葛嶺)라고 불렀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가을을 뜻하는 추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에 있던 마을은 원래 옥정리(玉亭里)로 서지마을에 속했는데 내장산에 관광객이 찾아들면서 이 재에서 쉬어 가게 되자 도로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1983년 서지마을에서 분리돼 추령마을이 되었다. 

▲서지마을 전경.
▲1978년 하마마을 전경.
▲현재 하마마을 전경.

박유전 명창 생가 터

박유전(朴裕全ㆍ1834∼1904) 명창은 조선후기 8대 명창이자 서편제(西便制) 창시자다. 그가 만든 서편제는 판소리 용어 중에서 ‘판소리’란 말 말고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일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이 영화 <서편제>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사람들은 “판소리 하면 서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남원 운봉 출신인 송흥록의 동편제 소리가 최고의 세력을 뽐내던 구한말, 소리의 신(神)은 이 땅의 판소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복흥면 백방산 자락에 박유전을 보냈다. 그것은 이 땅의 판소리를 완성하라는 소리 신의 밀명이었다.
박유전 명창은 헌종 무렵인 1835년 복흥면 서마리 마재(현재의 하마마을)에서 5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한쪽 눈을 잃어 외눈박이로 지내면서 주변의 천대를 받고 서러움을 안고 자랐다. 천부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장애로 인한 한(恨)을 소리에 담았다.
그의 소리는 복흥에서 싹이 트고, 18세 무렵 전남 보성군 대야리 강산마을로 옮겨가 예술세계를 완성했다. 25세의 나이에 전주대사습에 나가 <심청가>로 장원을 차지해 요즘 말로 일약 톱스타가 되었고, 전라감사 주선으로 상경해 판소리 최고 후원자인 대원군을 만나게 된다. 대원군은 “박유전의 소리가 강산(江山)에서 천하제일”이라고 추켜세우곤 했다. 대원군 실각 후 민씨 일파의 보복을 피해 남으로 내려오다가, 전남 나주에서 정재근을 만나 그의 사랑채에 숨어 살게 된다. 보성소리는 정재근을 거쳐 그의 조카 정응민에게 전해진 박유전의 말년소리에 동편제 김세종(순창 동계 출신)판 <춘향가>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하마마을 초입 당산나무 아래에 서편제 창시자 박유전이 태어난 마을임을 알리는 알림판이 있다. 하마마을에 살던 박유전의 5대 종손 박병섭이 사망하고 이제는 사촌의 후손들마저 찾을 수가 없다. 당산나무 아래 안내판이 이곳에서 태어나 14살까지 성장한 박유전을 알려 주는 유일한 창구다. 이제라도 박유전 명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생가, 그리고 득음을 치열하게 추구하였던 앞마당과 주변을 정리하는 성지 작업이 필요하다.

▲박유전 명창 생가터.

추령장승촌

추령장승촌은 복흥면과 정읍시 경계지점이자 노령산맥 중간 지점인 해발 320미터 추령(秋嶺)에 자리 잡고 있다. 앞에는 전라북도산림박물관이 있고, 남으로는 강천산, 서로는 백양산, 북으로는 내장산이 보인다. 
전국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명소로 자리 잡은 추령장승촌은 1990년대 초 장승을 조각하는 목공예가 윤흥관 촌장이 추령에 정착하면서 조성되었다. 1995년부터는 매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추령장승축제가 열리고 있다. 풍광이 멋진 추령 넓은 야외에 전국 각지의 전통 장승, 장승 창작품, 아프리카ㆍ인도 등지의 장승과 솟대, 움집 등이 1000여 점 전시돼 있고, 작은 전시실에서는 민속자료 100여 점을 볼 수 있다. 이 곳은 장승공예가가 창작품을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며, 관람객들이 장승 깎기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추령장승촌의 장승은 여타 마을 장승과 다르다. 마을 장승은 마을 공동체 신앙의 전통에 따라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고 협력해 조각하고 마을 입구에 2기를 서로 마주 보게 세워 놓는다. 추령장승촌 장승은 장승조각가 윤흥관 촌장이 목공예 장인 정신으로 조각한 관광용 장승이라는 차이가 있다. 

▲추령장승촌.

전라북도산림박물관

복흥면 추령로 1777에 자리 잡고있는 전라북도산림박물관은 자연과 산림에 대한 역사 보존과 학습을 통한 산림문화 창출을 위해 ‘살아 있는 산ㆍ생명의 산ㆍ영원한 산’을 주제로 건립해. 2002년 3월 25일에 개관했다. 국립수목원내 박물관과 충남ㆍ경남에 이어 전국에서 4번째로 설립된 산림전문박물관이다. 
산림박물관 전체 면적은 5933제곱미터(㎡), 1층(3759㎡)에은 로비, 제1∼5 전시실, 휴게소 등이 있다. 2층(1034㎡)은 사무실ㆍ표본실ㆍ영상관 등이 있다. 야외에는 체험시설로 숲속 친구들과 산촌 주택이 있다.
전시장은 200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으며 꼼꼼히 둘러보면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로비에는 각종 야생동물 박제류와 목공예품ㆍ민속생활용품이 전시됐고, ‘숲으로의 초대’를 테마로 한 도입부에서부터 7개 주제별 전시공간이 칸막이 없이 탁 트인 개방형 시설에 마련돼 있다. 
지구와 생명의 탄생ㆍ산맥의 형성과정 등을 설명한 ‘산림의 이해’에서 출발, 산림과 생태계ㆍ임산물 종류와 이용실태 등을 차례로 보여주며 산림과 관련된 농경사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민속자료도 전시돼 있다. 조류 이름이 새겨진 단추를 누르면 그 새의 모습과 소리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철새 이동 경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설과 오크ㆍ홍송ㆍ단풍나무ㆍ괴목 등 각종 목재와 석재의 재질을 비교할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눈길을 끈다. 
특히 각종 산림정보를 원형 대형 스크린과 음향을 통해 상영하는 영상시설 ‘서클 비전’은 이곳의 자랑거리다. 전통 한지로 제작된 소품류와 수달ㆍ황조롱이 등 야생동물 박제류ㆍ석재ㆍ목재를 비롯해, 디딜방아와 절구통ㆍ홈통 등 민속생활용품을 포함해서 전시된 자료는 모두 1100여 점에 이른다.

▲전라북도산림박물관.

하마마을 느티나무

하마마을 느티나무는 수령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 16미터(m), 가슴 높이 지름 1.27m, 수관(樹冠) 폭 20m다. 나뭇잎이 일제히 피어나면 그 기운으로 풍년이 온다는 전설을 가진 신령목으로 농사철이면 땀을 식히거나 식사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 이 나무를 설명한 철제 안내판이 있고, 주변에 누정이 있다. 1982년 9월 20일 보호수 제9-12-9-5호로 지정되었다.

▲수령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하마마을 느티나무.

장자골 호랑이와 어린아이

옛날 복흥면 백방산(栢芳山ㆍ660m)에 있는 장자골 마재마을에 사는 조희동 부부에게 세 살, 어린 딸이 있었다. 봄철 농번기를 맞아 부부는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했고, 어린 딸 혼자 집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딸아이가 밥을 지으러 우물에 물 길으러 나온 어머니를 따라나섰다가 실종되었다. 아무리 찾아도 딸이 보이지 않아 점치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호랑이가 물어갔으나 무사하다며 백방산 장자골로 가보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장자골을 찾았더니 골짜기 안쪽 널따란 바위 위에 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이는 상처 하나 없었으며 호랑이 품에서 잤는지 온몸에 호랑이 털이 묻어 있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무탈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산악에 호랑이가 폭넓게 서식했고, 호랑이로 인한 피해도 자주 발생했다. 복흥면에 있는 백방산도 골이 깊어 호환이 자주 발생하던 곳이다. 장자골 안쪽에 있는 널따란 바위는 호랑이가 어린아이를 품고 재운 곳이라고 전하고 있다.
서마권역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권역단위 종합개발사업에 선정돼 서마권역(추령ㆍ서지ㆍ하마) 창조적마을 만들기 사업에 40억원을 들여 2021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추령장승촌과 장승축제, 알음알음축제, 산림박물관 등 지역에 산재한 문화자원을 연계해 농촌생활문화센터를 조성한다. 추령 장승 문화의 길, 하마 박유전 명창의 서편제길 등으로 구성된 둘레길 조성사업, 농촌환경 개선사업도 추진한다. 

▲장자골 호랑이와 어린아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백방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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