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폐설존/ 익을수록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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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폐설존/ 익을수록 숙인다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0.07.0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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齒敝舌存 (齒이 치, 敝피폐할 폐, 舌혀 설, 存있을 존)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215

중국 한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에 나온다. 단단한 이는 빠져도 부드러운 혀는 남는다. 

수원에 있는 농업교육원에서 세미나를 마친 후 동료 몇몇이 수원 갈빗집에 둘러앉았다. 인상이 별로이기는 하나 만면에 웃음을 띤 주인이 나를 빤히 보더니 대뜸 입을 열었다. 
“혹시, 정 대위님 아니세요? 거기 고향이 순창이고….” “네. 어찌 저를 아세요? 지금은 전역한지 오래됐는데….” “아이고, 선배님, 저 읍내 버스터미널 강광필(가명)! 양구 삼청교육대!” 
그렇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전방 중대장 시절, 부대 근처에서 ‘삼청교육’을 받았던 그 유명한 깡패, 그 당시 강광필을 찾아가 담배 한 갑만 전해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만났던 그였다. 
“어찌 된 거요? 자네가 이 식당 사장?” “맞습니다. 그때 선배님이 절 몰래 빼내어 두부 두루치기에 막걸리를 마시게 하셨죠. 그 후 고향에서 고개를 들고 살 수 없어 무작정 상경하였습니다. 마침 영등포역에서 이 식당 원래 주인, 그러니까 장인이 어떤 깡패한테 돈을 뺏기고 맞고 있다가 제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이곳에서 주차관리원으로 시작했죠. 식당 청소와 주방장 보조를 하다가 주방장까지 올라갔습니다. 장인어른이 저를 신임하여 과부가 된 외동딸을 저에게 주어 데릴사위가 되었습니다. 양구에서 그때 선배님이 ‘주먹보다는 부드러운 말과 웃음이 더 무서운 거야.’라고 말씀하신 거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생활신조가 되었죠.”
옛 중국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눈이 많이 내린 아침, 숲을 걷다가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굵고 튼튼한 가지들이 처음엔 눈의 무게를 구부러짐 없이 지탱하고 있었지만, 점차 눈이 쌓여 무거워지니 지탱하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것이었다. 반면에 이보다 가늘고 작은 가지들은 눈이 쌓이면 자연스레 휘어져 눈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다시 원래대로 튀어 올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노자는 깊이 깨달았다. 
‘아! 저 나뭇가지처럼 구부려 뜨려 변화하는 것이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이치로구나.’
노자가 평소 공경하여 따르던 ‘상용’이 돌아가시게 되자 찾아가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다. 그가 입을 짝 벌렸다가 다물고는 물었다. 
“내 이가 아직 있는가?” “없습니다.” “내 혀는 남아 있는가?” “예, 남아 있습니다.” “내 말을 이해하였는가?” 노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단단한 게 먼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게 남는다는 말씀이시죠.”
“맞도다. 천하의 이치가 그 안에 있느니라.”
단단한 이빨보다 부드러운 혀, 나락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 오래가는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 노자의 고사로 자신을 낮춰 경청하고 좋은 것을 취하여 받아들이는 사람이 세상을 이기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이 성어를 만들었다. 강함보다 부드러움으로 사람을 대하면 돈독한 정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이다. 유사한 성어로 강한 자는 먼저 망하고 약한 자가 오래 몸을 보존한다는 의미가 있는 치망설존(齒亡舌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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