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도는 열읍지도 등사령((列邑地圖謄上令ㆍ각 고을의 지도를 올리라는 명령)에 따라 1872년(고종 9)에 전라도 순창군에서 제작한 지도다. 채색지도로 정확도가 높다. 5리(里) 단위로 표시된 점은 다른 지도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도로를 10리 단위로 끊어서 점을 찍기도 했다. 순창읍(淳昌邑) 지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왼쪽은 좌부면(左部面)이라 하여 9개 리를 관할했고, 오른쪽은 우부면(右部面)이라 하여 16개 리를 관할했다.
응향지
지도 왼쪽에 있는 연당(蓮塘)은 1970년대 말까지 순창군청 앞마당에 있던 연못으로 응향지(凝香池)를 말한다. 조선시대에 순창지역에서 군민들이 누정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응향지 덕분이었다. 응향지는 관아 서쪽 앞뜰을 가꾸어 연꽃 연못(연당ㆍ蓮塘)을 조성했는데, 인접한 대교천(경천) 물길을 대어 만들었다. 초여름이면 흰 연꽃이 만발해 그 향취가 그윽했으며, 달 밝은 밤이면 문인들이 배를 띄워 시를 읊조리고 술을 마시며 선유(仙遊)) 하던 명승지였다. 응향지는 문헌상에 연못 주위로 응향각(凝香閣), 수옥루(漱玉樓), 관정루, 취홍정, 교용정 등 정자와 누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1970년대 말까지 존재했던 것보다도 훨씬 큰 연못이었던 것 같다. 1980년 대부분 메웠다.
응향지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격멸한 강감찬이 순창에 와서 하룻밤을 이 연못 근처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개구리 떼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니 강감찬은 왕개구리를 불러서 크게 꾸짖고 부적을 써서 붙였다. 이후부터 이 연못에서는 개구리가 울지 않았다고 한다.
응향각
지도에는 표시돼 있지 않지만 응향각(凝香閣)은 응향지에 있던 순창군의 대표적인 정자였다. ‘감미로운 (연꽃)향이 정자에 어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성익(林聖翊)이 1651년(효종 2)에 순창군수로 재임하던 중 관아 터에 지었다. 응향정(凝香亭)이라고도 전한다.
응향각은 관아에 딸린 정자로 순창 객사(客舍) 서편(지금의 군청 앞)에 연못가에 자리했다. 연못으로 통하는 큰 다리가 있었고, 흰 연꽃이 만발한 응향지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풍류처로 주위에 대숲과 나무들이 둘러싸 그윽한 맛이 있었다고 한다. 응향각은 조선의 수많은 명사가 방문해 자취를 남겼다. 영의정 등을 역임한 윤두수(尹斗壽)가 당시 전라감사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순창에 들러 순창군수 고경명(高敬命)과 자리하면서 응향각에 오르고 시주로 그 감회를 나타냈다. 조선 후기의 시조 작가요 두 차례 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던 이세보(李世輔)의 응향각과 화방재를 노래한 시조 4수가 남아 있다.
그 외 지명
연당(응향지)을 중심으로 아래에 화방제(畵舫齋ㆍ배가 정박한 모습의 누정)가 있다. 화방제는 응향각 서쪽의 남지(南池)와 경천 사이의 긴 언덕에 있었다. 연당 왼쪽에 사정(射亭)이 보이고, 연당 위로는 취향정, 수옥루(漱玉樓ㆍ현재 군청 민원실 부근에 있던 누정)가 있다. 그동안 문헌 상에만 존재했던 군청 주변 누정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왼쪽으로는 성황사와 대모산성(홀어미산성)이 보이고, 객사 서북쪽에 옥천동, 오른쪽에 관북리 지명이 있다. 동서남북에 4개의 사창(社倉ㆍ조선시대 각 촌락에 설치된 곡물 대여기관)이 있어 조선 후기까지 사창제도가 존속했음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