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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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달력
  • 차은숙 글 짓는 농부
  • 승인 2020.07.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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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농사가 끝났다. 2월 말부터 7월 초까지 기나긴 일주일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한 달, 아니 한 계절이 지난 것도 같다. 그래서 한 작물의 재배 시기를 일컫는 작기(作期)라는 말이 ‘농부의 달력’이다.
겨우내 자란 청보리를 갈아엎고 밭을 만든 것은 2월, 3월 초에 연둣빛 어린잎 몇 개, 솜털이 보송한 어린 모종을 아주심기 했다. 4월 내내 봄볕 속에서 줄기가 굵어지며 부쩍부쩍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5월, 노란 별꽃이 한두 송이 맺혔다가 피어나면 팔을 뻗치는 것처럼 점점 꽃대가 커가면서 차례차례 꽃이 피고, 꽃 진 자리에 아기 토마토가 태어났다. 그런 꽃대가 7, 8개 나오고 나서 생장점을 잘라주는 순지르기를 했다. 순지르기 이후 토마토는 알알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와! 토마토다.” 곁순을 따다가 소리쳤다. 듣는 사람 하나 없어도 괜찮았다. 맨 아래 꽃대에서는 드디어 햇살을 담은 빨간 방울토마토가 보이면 5월 중순이다. 농부의 달력에 웃음 스티커를 붙이고 따사로운 햇살만큼 마음 온도도 올라 간다.
“얼른 와서 여기 좀 봐!” 먼 데서 일하는 옆지기도 부른다. 내가 먼저 봤다고 쓸데없는 자랑도 한다. 올해는 어떤 맛일까? 잔뜩 궁금한데 예쁘고 아까워서 한 사흘은 구경만 했다. 
그리고 6월이다. 오지고, 오진 수확의 계절!
이른 아침부터 하는 일의 대부분은 토마토를 따는 일이다. 수확용 손수레에 노란 바구니를 싣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선다. 첫 수확은 과분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빗 한다. 설레고 참 고맙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수확이 시작되면 설레던 마음은 접어두고 숫자들을 헤아린다. 오늘의 택배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크기대로 선별을 하고 몇 킬로 몇 상자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매일매일 비슷한 그러나 하루하루 모두 다른 날들이 계속된다.
이때는 맛있어요, 싱싱해요, 고마워요, 선물하고 싶어요, 선물 받았어요. 이런 말들이 우리의 단어가 된다. 참 좋다. 일하다 몇 알 따 먹는 맛도 그만이고 새참으로 먹는 빵도 맛나다.
그러는 사이 열매가 뻥튀기라도 한 듯 엄청 많아진다. 도매시장에 낸다. 실망스러운 결과에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다잡기도 한다. 그래도 또 하루하루 토마토를 딴다. 그렇게 따다 보니, 어느 날인가는 내일 딸 토마토가 없을 것 같아 조바심을 낸다.
그러면 또 마음을 다독인다. 욕심내지 말자고, 그러다가 다음날 하우스에 가보면 그새 토마토가 익어있다. 그러기를 몇 번, 결국 걱정하지도 욕심부리지도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토마토가 알아서 하겠지!” 농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늦게 당연한 이치를 발견한다. 
7월의 장마가 왔다. 한 뼘 남짓했던 키가 2m 넘는 줄기로 자라나며 그토록 많은 꽃을 피우고 열매 맺었던 줄기를 잘라냈다. 
“애썼네, 고마워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줄기를 잘라낸 하우스 안도 날마다 들여다보았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토마토 대는 마르지 않는다. 무성했던 잎이 점점 오그라들어도 더러 달린 열매는 여전히 빨갛고 줄기도 푸르다. 쉬이 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한 시절이 찬란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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