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33)/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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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33)/ 고장
  • 선산곡
  • 승인 2020.08.0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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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성주 10년이 되니 집안 곳곳에 손 봐야 할 곳이 생긴다. 마루 난간이 흔들려서 자세히 살펴보니 기둥과 판자 이음새가 벌어져 있었다. 타정기(打釘機)로 쏜 못이 빠진 것이다. 주변 판자를 뜯은 뒤 기역자 꺾쇠로 고정을 했더니 기둥의 유격은 멈췄다. 이 기회에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마루를 하나하나 디디며 점검에 나섰다. 썩은 판자와 함께 쿨렁거리는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목수는 아니지만, 이 정도는 손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해보자, 인터넷을 뒤져 주문한 방부목은 사흘 만에 도착했다. 썩은 판자는 걷어내고 새 판자를 마름질해서 나사못으로 고정해나가는데 군데군데 헛도는 곳이 많았다. 비로소 확인해보니 판자를 받쳐주는 가로장목이 썩어가고 있었다. 못이 헛돌고 고정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이 커졌다. 위에서만 수박 겉핥기를 할 수 없어 마루 밑에 들어가 보니 썩어가는 가로장목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가로장목은 주문이 되지 않아 건축자재 회사에 가서 길이를 재단해 올 수밖에 없었다. 날씨 좋은 날 밀대모자 쓰고 목에 수건을 두른 다음 장갑을 끼고 나섰다. 드릴과 못 그릇을 드니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의 기분이 들었다. 계단 밑을 통해 지하실 같은 마루 밑에 들어가 썩은 목재 옆에 새 판목을 질러 기역자 꺾쇠로 단단하게 고정했다. 몇 시간, 일을 마치고 나니 묘한 성취감이 생긴다. 고쳐낸다는 재미가 있었다. 조수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아내가 내 작업 모습을 사진 찍고 가족들에게 전송한다며 말했다.
“대목(大木) 되겄소.”
며칠 뒤 시디플레이어가 고장이 났다. 전자기기는 주인과 궁합이 있다는 말을 어느 정도 믿는 편이다.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한 이 제품은 처음부터 실망이 컸다. 창에 뜬 문자가 너무 작아 잘 읽을 수도 없는 데다 걸핏하면 시디 여닫이가 열리지 않았다. 어쩌다 작동이 되다 말기를 반복하더니 결국은 단단히 입을 다물고 만 것이다. 마룻장이야 내 손으로 한다지만 전자제품은 속수무책이다. 
고장(故障) 난 것들을 한꺼번에 고쳐보자 작정하고 작동이 안 되는 프린터와 시디플레이어를 차에 싣고 나섰다. 먼저 들른 프린터 수리회사에서는 컬러는 불가능하지만, 흑백은 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어 들른 시디플레이어 수리는 부품 교체비가 적지 않았지만, 고가의 제품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루에 두 가지 고장 난 제품을 고치고 나니 기분이 조금 상쾌해졌다.
며칠 뒤 욕실의 비대라고 불리는 기구가 고장이 났다. 출장 나온 기사는 ‘이 제품 단종이니 새로 사시는 것이.’ 했지만 상당한 출장수리비를 내고 그냥 고쳐 쓰기로 했다. 다음 날은 욕실의 새면대가 심상치 않았다. 아침에 욕실 바닥에 물이 흥건한 것이 어디선가 누수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요리조리 살펴보니 수전 꼭지에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거기에 쓸모 많았던 대형 믹서기가 고장이 났고 오디오 장식장 서랍 레일이 무너졌고 그 패널 유리가 금이 갔다. 올여름 들어 주변에 있는 사물 고장이 릴레이를 하며 나를 긴장시킨다. 숨 고르기 벅찰 정도로 고쳐내고 부셔내고 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 있었다.
보통 사물의 고장주기는 10년쯤 돼 보인다. 우리 집 티브이, 세탁기, 냉장고, 김치냉장고, 청소기, 에어컨, 전자레인지 등이 그 과정을 거쳤다. 전자제품뿐만이 아닌 사람의 신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몸의 기능도 십년 단위로 퇴화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못쓰게 고장 난 물건들이야 버리면 되지만 이 나이에 생긴 고장 난 내 허리는 어떻게 수리를 해야 할까. 요즘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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