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우리역사(14) 여걸 우씨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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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역사(14) 여걸 우씨왕후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8.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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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선택한 ‘두 왕의 왕비’

우리나라 역대 왕후(왕비) 가운데 고구려 우씨왕후 만큼 특출한 정치력을 발휘했던 인물도 흔치 않다. 우씨왕후는 고구려 귀족 연나부(椽那部) 출신으로 제9대 고국천왕 재위(179~197년) 때도 왕후 친척들이 권력을 휘둘렀음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우씨왕후의 정치적 능력은 고국천왕이 사망한 후 더욱 적극적으로 발휘되었다. 
197년 5월, 고국천왕이 후사 없이 사망했다. 왕후는 왕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밤에 몰래 궁궐을 나섰다. 그녀가 처음 찾아간 곳은 왕의 첫째 동생인 발기의 집이었다. 남편의 죽음을 숨긴 상태에서 발기에게 “왕의 아들이 없으니 마땅히 당신이 왕의 뒤를 이어야지요”라고 말했다. 발기는 ‘형수가 혹시 자신을 끌어들여 모반을 벌이려는 게 아닐까’ 의심해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며 형수를 돌려보냈다. 
발기에게 무안을 당한 왕후는 왕의 둘째 동생인 연우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연우는 발기와는 정반대로 한밤중에 찾아온 형수를 매우 환대했다. 이에 왕후는 연우에게는 왕의 죽음을 솔직하게 알렸다. 그러면서 발기에게 한 것과 똑같이 당신이 왕이 되라고 제의했고, 연우는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궁중으로 들어갔다. 
《삼국사기》<고구려 본기>는 고려 때에 편찬되었지만, 기본적으로 고구려 사관이 남긴 자료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궁궐에 들어갔다”라고 하지 않고 “손을 잡고 궁궐에 들어갔다”고 기록한 것은, 그날 밤 술자리에서 두 남녀 사이에 벌어진 일을 독자에게 암시하고자 하는 고구려 사관들의 의도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왕후는 다음 날 아침 대신들을 모아 놓고 “왕이 연우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죽었다”는 거짓 유훈으로 연우를 왕위에 앉혔다. 이때 즉위한 연우가 바로 고구려 10대 임금 산상왕(재위 197~227년)이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발기는 군대를 동원해 왕궁을 포위했지만, 나라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자 요동의 공손씨에게 도망했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발기의 죽음으로 즉위 초 혼란이 수습되자 우씨왕후 덕분에 왕위에 오르게 된 산상왕은 다시 장가들지 않고 그녀를 왕후로 삼았다. 고국천왕의 왕후가 고국천왕의 동생인 산상왕의 왕후가 된 것이다.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는 ‘형사취수혼(兄死娶嫂婚)’은 고구려뿐만 아니라 북방민족 사이에서는 흔한 풍속이었다. 하지만 왕후의 행위는 단순히 취수혼 풍속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왕의 죽음을 다음 날 새벽까지 비밀에 부치고 왕궁을 장악하며, 왕위 결정권을 행사하는 등 탁월한 정치력을 보여주었다. 
우씨왕후는 산상왕이 사망하고 후궁 소후의 자식인 동천왕이 왕위에 오른 후 태후가 되었다. 그녀는 234년(동천왕 8)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다. 그 내용은 “두 명의 남편 중 산상왕의 무덤 곁에 묻어달라”라는 것이었다. 취수혼의 경우 본 남편의 무덤에 합장하는 것이 도리인데, 그녀는 마지막 장지까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우씨왕후는 두 왕의 왕후로 48년, 태후로 7년 모두 55년 동안 3대 왕에 걸쳐 왕후와 태후라는 자리에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유래 없는 두 왕의 정식 왕비로서 지위를 누렸는데 그것도 왕비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씨왕후는 살아서도 그녀의 뜻대로 막강한 힘을 지녔고 죽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 윤리적 평가를 떠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최고 지위를 차지하고 주체적인 삶을 산 여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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