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보다 ‘선비문화 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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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보다 ‘선비문화 체험관’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20.08.1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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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 교육기관”(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다.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으로 “서울의 사학(四學)과 마찬가지로 성균관의 하급 관학(官學)으로서 문묘(文廟)ㆍ명륜당(明倫堂)ㆍ중국 조선의 선철(先哲) 선현(先賢)을 제사하는 동무(東廡)ㆍ서무와 동재(東齋)ㆍ서재가 있어 동재에는 양반, 서재에는 서류(庶類)를 두었다. 각 지방관청의 관할 하에 두어 부(府)ㆍ대도호부(大都護府)ㆍ목(牧)에는 각 90명, 도호부에는 70명, 군(郡)에는 50명, 현(縣)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고, 종6품의 교수와 정9품의 훈도(訓導)를 두도록《경국대전》에 규정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향교는 고려시대 유학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으나 “조선왕조의 성립과 함께 정책적으로 그 교육적 기능과 문화적 기능을 확대, 강화”하였고 “따라서 향교의 전반적 설명은 조선왕조에서 전개된 역사상을 중심으로 설명되어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조선시대에 향교의 운영을 위해 국가가 재정적 지원과 학전(學田)과 학노비(學奴婢)까지 공급했으나, 교관 확보의 어려움(문과에 합격한 자가 지방의 교관직에 부임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을 개선하지 못해 관료적 조직으로 변했고, 유능한 학도들은 강학 능력을 상실한 향교를 멀리하고, 서원ㆍ서당ㆍ정사 등 사학기관을 찾게 되었다고 적혀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출세욕이다. “생원ㆍ진사들도 과거를 통하여 중앙의 행정관료로 진출하는 것을 희망하였고 교도직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고 한다. 왕조를 거듭하며 다양한 유인책과 교육책이 시도되었지만, 영조 때 향교의 모든 교관은 없어지고 문묘의 향사를 하는 관학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하는 데 급급했단다. 한편, 당시 향교에서 유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생의 사회적 신분은 명백히 양반이었지만, 조선왕조의 유교 교육은 양인(養人)과 교화라는 양면적 목표도 보였다. 기숙사의 동재(東齋)ㆍ서재(西齋) 구별과 액내(額內)와 액외(額外)로 양반과 평민 교생을 구분했지만, 누구나 독서를 원하면 향교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었다. 
조선의 통치이념이자 생활윤리는 성리학이다. 고려 인종 때(1127년)에 향교가 세워졌다고 하나 전국 1읍(邑) 1교(校) 체계를 갖춘 것은 조선 성종 때(1488년)이다. 군현 단위까지 설치된 조선시대 향교는 인재 교육과 지방사회의 교화를 담당한 일종의 지방 공립학교였다. 향교는 제례를 담당하는 대성전과 교육을 담당하는 명륜당, 선현을 모신 동ㆍ서무 등 유교적 위계질서와 계층에 근거하여 배치된 장소이다. 반면,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지방 사림들의 학풍을 바탕으로 인재 육성을 위해 조성한 요즘의 사립학교에 해당한다. 17세기 들어 사원이 급증한 것은 사림세력의 성장, 향교(관학)의 부진과 쇠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행정단위 고을마다 관아가 있었다. 관아에는 고을 수령이 근무하는 ‘동헌’과 수령이 기거하는 ‘내아’,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기거하고 임금의 위패를 모신 ‘객사’를 마련했다. 관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건물은 왕의 위패를 모신 객사였고 유교적 건축 질서에 따라 조성되었다. 향교는 1읍1교 원칙에 따라 관아와 인접할 수밖에 없었고, 서원은 읍내로부터 일정 정도 떨어져 자리 잡았다. 서원은 학문에 몰두하기 위해 개인이 설립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교적 토대에 따라 설치ㆍ유지해온 향교, 서원, 관아는 조선의 대표적인 기관이자 문화적 유산이다.
조선 518년 역사는 이러한 행정ㆍ교육ㆍ사회 체계의 산물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있는 유교 문화는 조선의 ‘관아ㆍ향교ㆍ사원’의 밑동 아닌가? 전국에 남은 향교와 서원에서 한문ㆍ고전ㆍ전통예절 가르치고, 전통음식 만들고, 전통혼례 치른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ㆍ종묘 제례악은 인기 높은 관광 상품이듯 순창향교에서 제례나 혼례, 문화체험도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 향교ㆍ서원ㆍ관아는 그 자체로 훌륭한 문화재요 관광 상품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들이 향교와 서원, 관아 보존과 복원에 힘쓰고 있다. 순창향교 옆에 ‘고깃집’보다 ‘선비문화 체험관’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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