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금과들소리 공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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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금과들소리 공연을 다녀와서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09.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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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후련해지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도 가락이나 가사가 따라다닌다. 
“앞산은 멀어지고 뒷산은 가까워지네.” 금과들소리 모심기 소리다. 뒤로 가면서 모를 심는 정경이 재치있게 담겼다. 장구통같이 구불구불한 논배미를 장구배미라고 불렀다고 한다. 
농민들은 그 논들을 넘어 다니며 물을 품고 모를 찌고 김을 맸을 것이다. 해도 해도 줄지 않던 일도, 허리를 펴보면 어느새 ‘서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큼 남았’을 것이다. 해 저문 줄도 모르고 일을 하다 보면 이른 달이 뜨기도 했을까. ‘니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네. 이 논배미를 다 심으면 장구배미로 넘어를 가세.’ 논 하나를 끝내면 다음 장구배미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 농요의 흥과 가락이 아니라면, 가사 속에 재치와 유모가 아니라면 긴 장구배미를 어찌 넘어 다녔을 것이며, 아득하기만 한 논에 모를 다 심어낼 수 있었을까. 금과들소리 가사는 농민들의 애환과 희망이 오롯이 담겨있다.
공연을 마치고 어르신들은 무용담을 풀어내신다. 예전에는 소를 길들여서 싣고 가서 소리를 했다고 한다. “땀이 나서 옷을 짜가면서 공연했어.”, “밭 묵혀가면서 연습하고 다녔어.”, “한 해에 일곱 번 공연 간 적도 있어.” 
공연과 인터뷰 마치고 물음표가 잇따른다. 고령과 바쁜 농사일에도 이 분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고령자가 대부분인 보존회, 이 소리를 이어가는 일은 가능할까?
공연을 즐겁게 지켜보시던 김기호 대성리 이장님이 떠올랐다. “공연 준비하는 걸 지켜보면서, 옛날에 아버지 일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물 품고, 모 찌고, 지게로 옮기고… 기계 없이 다 손으로 해온 일이다.” 그렇다. 하는 이도, 듣는 이도, 몸에 새겨진 리듬과 가락을 소환하고 있었다. 그 리듬과 가락이 거동이 불편한 다리를 들어 딛게 하고, 팔을 들어 춤추게 하는 것이었다. 이분들이 고령이어서 들소리를 보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들이 몸에 가락과 리듬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가락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리듬과 가락이 농사 ‘농’자도 모르는 이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날 태평소를 분 이환주 씨는 전주 사는 전문 국악인이다. 그는 “금과들소리는 모심기 등 농경문화를 예술로 승화한 작품이다. 일정한 틀에 매이지 않는 농요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라고 말한다. 단지 전통 계승이 아니라, ‘농경예술로서’ 금과들소리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전국 228개 시군에서 지역 농요를 문화재로 보유한 곳은 고작 34곳. 너도나도 전통이라는 광산을 닫아건 시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금과들소리라는 이 굵직한 광맥을 부단히 캐온 금과들소리 보존회원들과 순창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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