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 여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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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여름 단상
  • 김귀영 교사
  • 승인 2011.08.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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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영 유등초 교사

폭염에다 방학 중이라 하릴없이 뒹굴며 텔레비전과 싸우다가, 또는 못 봤던 책이나 실컷 읽어 볼 요량으로 방안퉁수가 되어있는데 우리집 마나님 호통소리가 제법 크다.

“구구팔팔 이삼 사, 빨리 나가서 운동 좀 하세요.”

대모암 앞에 차를 두고 홀어미 산성으로 올라갔다가 세모실로 돌아서 성천가를 걷기로 했다. 서 있는 일이 선생이라 직업병이 생겼는가? 십수년을 넘게 오르던 금산을 그만 두고 완만한 곳을 오르거나 평지를 걷기로 한 것이다. 왼쪽 무릎이 고장난일 때문이다. 장수의 고장 순창에서 기본이 백살이 아니던가?

대모암 초입 양 옆에 우리 광산 김씨 선대의 묘소를 지나며 묵념을 드리고, 오르막을 지나 오른쪽 대모암 본전을 향해 걸으니 아스라한 유년의 추억이 떠오른다. 대모암, 귀래정, 향가리, 고뱅이 등. 어린 시절 몇 차례씩 동무들과 소풍을 갔던 곳이니 말이다.

세모실을 돌아나와 옥천동을 지나서 군청 앞 한타리에 서 있다.

지금이야 광주 가는 길 쪽에 순창제2교 다리며 남산대가는 쪽으로는 옛날 백합사진관 앞에 또 세워진 큰 다리도 있고 주공아파트 지으면서 사정부락 앞에 세운 장수교까지 여러 개가 있지만 옛날 그 시절에는 한타리는 순창읍내 사람들에게는 명물이었다. 정월 보름날 밤이면 저~어 윗동네 충신당에서 부터 옥천동, 관북리 사람들이며 대동산 아래 각수페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나이 수대로 다리를 돌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야 관북리 순창국민학교 담벼락 바로 옆이 우리 집이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손잡고, 좀 더 커서는 동네 형 누나들 따라서, 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이 동네 저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리 밟기를 핑계 삼아 신나게 놀았던 일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졌던가?

당시 우리 집은 조부이신 故 득(得)자 신(信)자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집에 열 몇가구가 넘게 모여 산 제법 큰 집이어서 집안 어린아이들만도 시끌벅적했는데 모두 어울려 한타리 앞 냇물로 가 실컷 놀다가 군청 옆 윗 방죽과 아랫 방죽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연꽃(열매?)을 따먹다가 망을 보시던 신석우 어르신께 들켜서 얼마나 불호령을 당했던가! 고학년으로 올라가서는 칼싸움이며 별 별 놀이로 하루해를 보내고 한타리 아래서 멱 감고 구신바우(귀신바우)로 진기포까지 덜덜 떨면서 헤엄치던 일이 엊그제이련만. 아~!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 듸 없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옛 동무들이여.

지금도 한타리의 비석(한해오 효자비)이 군청 옆에 있으리라.

성이 한씨인 해오라는 아이가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강 건너 주막에서 술이 취하여 돌아오시는 길에 옷이 젖을까봐 아버지를 위해 일 년 동안 혼자 만든 다리를 보고 나라에서 비를 세워 주었다는 한타리. 그러니 정식이름은 한다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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