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농부(9) ‘고장 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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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농부(9) ‘고장 났’데이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0.10.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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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부는 농사에만 서툰 게 아니라 농기계 다루는 일에도 서툴다. 둘 다 경험과 숙련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싶다.
지난여름, 벌써 계절이 그렇다. 폭우로 물이 찼던 하우스에 심은 토마토가 익어가기 시작한다. 알알이 굵고 의젓(?)해서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그런데 기계들은 흙과 달리 고장이다. 여기저기서, 이것도 저것도. 제일 처음 말썽을 일으킨 것은 지하수 관정의 펌프였다. 멀쩡한 둑에 자리 잡고 있던 펌프 위치까지 물이 차올랐었다. 작물을 키우려면 물이 최우선이니, 걱정이 컸지만 작업동과 하우스 안의 복구가 급했다. 정리하고, 아주 심기 전에 점검하니 걱정대로 펌프 작동이 안 된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여기저기 열어보고 손을 대도 마찬가지. 펌프 수리점에 맡겨야겠다 싶어 뜯어내려니 단단히 고정돼있어, 떼어내기도 쉽지 않다. 
안 되네! 어떡하지? 
애면글면하는 남편을 보며 나도 덩달아 끙끙대고 있었다. 그때 농로를 지나던 트럭 한 대가 멈추고, 반가운 사람들이 내린다. 우리 보다 십 년 가까이 먼저 귀농한 분들이다. 기계도 잘 알고, 전기도 잘 알고. 우리가 하는 모양새를 잠깐 지켜보더니, 몇 마디 묻고는 바로 처방을 내린다. 집에 놀고 있는 펌프가 하나 있다고, 그걸 쓰란다. 지금 고장 난 펌프의 상태와 그 집 펌프를 설명해 주는데 하나도 모르겠고 '휴우, 이제 됐네.' 하는 마음이다. 설치까지 도와준 덕에 바로 테스트를 했다. 물탱크에 콸콸 물이 쏟아진다. 펌프는 해결!
관정 펌프 말고도 관수를 위한 펌프도 점검, 여과기 청소도 하고 또 테스트, 호스가 몇 군데 물이 새서 보수하고 청소하려고 하니 에어컴프레셔도 안 된다. 남편은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고, 왜 또 안 되냐며 한숨이다. 이건 통과다. 없어도 당장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
옆면 시비에 필요한 동력 분무기도 점검해보니 먹통! 트럭에 싣고 읍내 수리점으로 향했다.
읍내 수리점은 수해 때문에 이 마을 저 마을에서 고치러 온 펌프 같은 기계들이 즐비하다. 다른 동네에 사는 아는 분도 만났다. 트럭에 옆집, 앞집 할 것 없이 예닐곱 개나 되는 모터를 싣고 왔다가 가져가는 중이란다. 사달이 난 건 우리 집만이 아니었다. 어쩌겠냐며 떠내려가지 않은 것도 어디냐고 위로한다. 다행히 전선 접속 문제로 일단락되었다.
이번에는 열풍기가 침수 영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휴, 날이 추워지니 큰 문제다! 펌프를 해결해 주었던 분도, 동네에서 못 고치는 기계가 없다는 분도, 읍내 여러 수리점에서도 해결이 안 된다. 사람들이 오가고, 뜯어보고, 청소하고, 다시 조립하고, 여기저기 전화하고 결국은 열풍기를 만든 용인의 공장에 택배로 보냈다.
덩치 크고, 무겁고 다루기 곤란한 물건이라 택배회사에서도 반기지 않는다. 택배 물건이 많아서 가는 걸 장담할 수도 없다나. 날은 하루하루 추워지고, 마음만 급하다. 그래도 수해 때문이라고 사정을 말하니, 보내준다고 해서 마음이 누그러든다.
작은 석유난로도 역시 안 되지만, 그럴 줄 알았어, 또 고쳐야지 하고 만다. 하다못해 집에서 쓰고 있는 프린터도 고장 났다. 아이고 왜 이래? 뭐든 고장이야. 날마다 고장났‘데이’야 하며 쓰게 웃었다. 
며칠 만에 멀쩡해진 열풍기가 돌아왔다. 반갑다! 공장에서는 오가는 택배비만 부담하라고 한다. 수리비는 안 받겠다고. 덕분에 기계와 함께 고장 났을 법한 마음도 수선한다. 감사해요. 사람들과 기계들의 우여곡절에도 아랑곳없이 토마토는 빨갛고 맛있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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