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라ㆍ크리스 부부… 순창 사랑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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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라ㆍ크리스 부부… 순창 사랑 ‘9년’
  • 김수현 기자
  • 승인 2020.10.2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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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순창에서 살고 싶어요.”

가을 단풍이 짙어가는 순창읍 경천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개와 산책하는 외국인 부부를 자주 본다.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다니며 휴지를 줍는 모습도 보았다. 궁금하던 터에, 이들에게서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자 〈열린순창〉 독자로부터 이들 부부 사연을 들었다. 
이름은 다니엘라(60)와 크리스(61). 크리스는 동계와 유등 지역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원어민 강사, 다니엘라는 군립도서관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2011년에 순창에 왔으니 9년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이들 부부는 순창을 ‘집 밖의 집’(home away from home)이라고 말한다. 순창에 온 지 오래돼, 순창에 처음 오는 젊은 원어민 교사들의 멘토이기도 하다. 젊은 교사들에게 순창과 학생들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 부부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도 배웠다. 

▲부부가 향가리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잠시 쉬고 있다. 

순창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이 각별해

“순창에서 사는 게 만족스러워요. 아름다운 자연과 배려심이 많고 친절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요. 새벽 5시 경천을 달릴 때 기쁨이 솟구쳐요.” 
“나미비아의 농장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항상 자연 속에 있었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그래서 순창의 아름다운 자연과 한적함이 좋아요. 향가리도 좋아하고, 자전거도로를 따라 하이킹하는 것도 즐겨요.”
이들은 고국의 아름답고 조용한, 야생동물로 가득 찬 민간 자연 보호구역에 작은 집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라 돌아갈 수가 없다. 순창의 아름다운 자연과 평화로움이 이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이유다. 

모든 인간은 환경을 돌볼 의무가 있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순창 사랑은 유별나다. 쓰레기봉투를 갖고 다니며 거리를 치운다. 산책하는 두 시간 내내 쓰레기를 줍다가 ‘청소부’로 오인 받기도 했다. 2016년에는 ‘자랑스런 군민상’도 받았다. “어디 살든 그곳에서 거리 청소를 했어요. 가르치는 것보다 청소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니엘라가 환하게 웃는다. 크리스도 말을 보탠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돌볼 의무가 있다고 믿어요. 쓰레기를 줍는 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고 있어요. 행동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될 수 없지요.”
자연스레 지구 온난화 등 기후 위기, 동물권 등에 마음을 쏟는다. 이들이 매년 열리는 고추장 축제를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처럼 화려한 볼거리나 행사는 없어도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갖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는다. 열심히 일하는 농민을 보며, 우리가 지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데 감명을 받곤 한다. 작년 1월부터 채식한다. 오리 농장을 보고 충격을 받고 실천하고 있다. 농장에서 오리들을 밀집 사육을 하고, 운송 과정에서 던지고, 밟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죽이는 것은 이해하지만 왜 고통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학생들, ‘인생의 결정권자로 살기를…’

다니엘라는 영어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학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다양하고 자유롭게 수업을 하는 편이다. 반면 크리스는 면밀하고 계획적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편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가르치는 일을 사랑하고 만나온 학생들을 사랑한다. 
원어민 강사로 일하는 소감을 물었다. “한국은 정책적으로영어에 필요 이상의 자원을 투자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영어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모국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필요한 사람만 영어를 해도 될 것 같다.”(다니엘라)
한국의 부모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디 자녀들에게 환경을 돌보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이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세상입니다.”(크리스) “부모가 원하는 게 아니고, 자녀가 원하는, 스스로의 삶을 살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다니엘라)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정말 영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말하고 읽을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크리스) “인생의 결정권자가 되길 바란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살기 바란다.”(다니엘라)

순창에서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

2021년 2월, 크리스는 교육청에서 정년으로 비자가 만료된다. 그 전에 새로운 직업을 갖지 못하면 순창을 떠나야 할 처지다. 다니엘라의 계획은 소박하다. “순창에서 소박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 할머니 선생님으로 사는 것.” 크리스는 좀 더 구체적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교육에 대한 역량을 높일 수 있었고,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정년이 다가오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순창이라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지역을 소개하는 관광 가이드로서도 일하고 싶다. 청소부 일도 좋다.”

환대는 필연적으로 공공성을 창출한다. 

크리스와 다니엘라 부부를 만나고 오는 길. 환대에 대해 생각했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저서 《사람 장소 환대》에서 ‘환대는 필연적으로 공공성을 창출한다’고 밝혔다. 한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일은 그 사람에게 단순히 장소를 내준다는 것 만은 아니다.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장소가 한층 더 공공성이 살아있는 장소, 환대의 장소로 이행해 간다’는 뜻이겠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가정을 이중 삼중으로 살피고, 아이들 교육을 살피며,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등 공공성을 확대해 왔다. 이러한 공공성의 확대는 ‘순창이 참 좋다’는 말을 더는 수사가 아니게 했다. 경천에서 개와 산책하는 외국인 부부를 여전히 만나고 싶다. 

▲순창 학생들과 한 컷.
▲거리 곳곳에서 쓰레기를 줍는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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