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그림책(2) 그럼 소는 누가 키워?
상태바
김영연의 그림책(2) 그럼 소는 누가 키워?
  •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 승인 2020.11.11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레드릭(레오리오니 그림/글 · 최순희 옮김)
▲프레드릭(레오리오니 그림/글 · 최순희 옮김)

어느덧 입동도 지나고 11월입니다. 농부들은 논밭을 갈무리하고, 감을 따 곶감을 만들고 무, 배추를 뽑아 김장 준비로 분주합니다. 야산에 동물들도 겨울날 준비를 하겠지요.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그림책이 <프레드릭>(레오리오니 글/그림)입니다. 겨울이 다가오자 작은 들쥐들은 프레드릭만 빼고 열심히 일합니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프레드릭, 지금은 뭐해?”
 “색깔을 모으고 있어, 겨울엔 온통 잿빛이잖아”
 “프레드릭, 너 꿈꾸고 있지?”
 “아니야, 난 지금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기나긴 겨울엔 얘깃거리가 동이 나잖아” 

 

이 이야기는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떠오르게 합니다. 밤낮없이 일하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프레드릭, 그러나 프레드릭은 여름내 놀면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흉보던 베짱이와 달리 “나도 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일의 종류가 다를 뿐입니다. 다른 들쥐들이 곡식을 모을 때 햇살, 색깔, 이야기를 모읍니다. 다른 가족들은 그런 프레드릭을 가만히 바라봐 줍니다. 이 점이 베짱이를 손가락질하던 개미와 다른 점이지요. 
겨울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먹이가 아주 넉넉했고 들쥐 가족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저장했던 곡식들은 다 떨어지고 추위에 떨게 되자 들쥐들이 프레드릭이 모은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프레드릭은 커다란 돌 위에 올라 따스한 햇살, 여러 가지 곡식들의 색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들쥐들은 몸이 점점 따뜻해지고 색깔들을 마음에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들려줍니다.

“봄쥐는 소나기를 몰고 온다네, 
여름쥐는 온갖 꽃에 색칠을 하지
가을쥐는 열매와 밀을 가져온다네,
겨울쥐는 오들오들 작은 몸을 웅크리지”
들쥐들은 감탄합니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나도 알아”

  
이처럼 프레드릭은 들쥐 가족에게 바로 시인이고 화가이고 연예인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열렬하게 프레드릭에게 환호와 응원을 보내고, 프레드릭도 자신이 시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양귀비꽃을 들고 반쯤 잠긴 눈으로 수줍은 듯 미소를 짓고 있는 프레드릭,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듯이 보여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프레드릭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위 반응도 많았습니다. 춥고 배고픈데 예술이 밥 먹여 주냐고. 한 마디로 ‘그럼 소는 누가 키워?’ 이런 표정들이었습니다. 프레드릭이 일 안 하고 놀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특히 사계절 논밭에서 일해온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가들은 시원한데 앉아서 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도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거라고.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집콕 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위안을 준 것이 무엇이었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는 ‘미스터 트롯’이요, 누구에게는 방탄소년단일 것입니다. 그리고 ‘미스터 트롯’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을 보았습니다. 
만약 프레드릭이 여러분의 가족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요? 몇 년 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송은이 씨가 ‘내가 프레드릭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빠의 지지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프레드릭의 삶을 인정해 주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겠지요.
〈프레드릭〉을 처음 만났을 때는 〈잠잠이〉라는 제목이었어요. 아마도 일 안 하고 잠만 자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번역했나 봅니다. 우리 집 둘째 딸이 어린 시절, 별명이 “또 자니?” 였습니다. 소파에서 뒹굴며 멍 때리고 있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러면 항상 그 아이 대답은 “아니, 나 생각하고 있어”였습니다. 둘째뿐만이 아니라 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프레드릭이었습니다. 그동안 나 혼자 소를 키우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이제부터 저도 프레드릭이 되어볼까요?
물론 누구나 프레드릭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도 키우면서 프레드릭같은 감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순창살이 1년. 눈호강을 했던 봄 벚꽃, 여름 백일홍, 가을 은행잎과 주홍감, 푸른 녹두와 붉은 팥, 검정 서리태까지 모두 모두 마음속에 저장하렵니다. 여러분들은 올 한해 어떤 색깔, 어떤 이야기를 모으고 살아오셨는지요? 

글 : 김영연 길거리 책방 주인장
전) 에반이즈 사고력교육연구소 연구실장
에반이즈 (언어사고) 초등교재 집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조합장 해임 징계 의결” 촉구, 순정축협 대의원 성명
  • 순창군청 여자 소프트테니스팀 ‘리코’, 회장기 단식 우승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